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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환경부 블랙리스트 떠난 자리, 낙하산 12개가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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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後 "적격자 없다"… 절차 바꿔 재공모, 文캠프 출신 앉혀

검찰 "특정인 서류 탈락하자 서류합격 전원 탈락처리한 의혹"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검찰 수사에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보고를 받았을 것이라는 단서까지 드러나면서 파장이 어디까지 커질지 짐작하기 어렵게 됐다. 환경부 내부에서는 "김 전 장관이 독단으로 블랙리스트 작성이나 표적 감사를 실시했을 리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관여한 사실이 드러난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닮은꼴'일 가능성도 있다는 말도 나온다. 환경단체 대표 출신인 김 전 장관은 흑산도 공항 건설 문제 등으로 청와대와 사이가 벌어지긴 했지만, 노무현 정부에서 3년 가까이 청와대 비서관을 지내 이 정부와 '코드'가 맞는 대표적 장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혔다. 그런 장관이 이끄는 환경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환경부 산하기관에 '낙하산' 12명

자유한국당이 지난해 12월 '블랙리스트'라며 공개한 문건에는 환경부의 8개 산하기관 임원 24명의 임기와 사표 제출 여부 등이 담겨 있다.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관련 인사 등을 공직에서 배제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특감반에서 근무했던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은 "해당 문건을 환경부에서 받아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폭로했다. 본지가 공공기관 경영 정보 시스템 '알리오'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문건에 등장하는 8개 기관에 실제로 노무현 정부 청와대, 더불어민주당 당직자와 의원 보좌관, 친여 성향 단체 출신 등 '낙하산 인사' 12명이 임명된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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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어내기'에 '특정인 꽂아넣기'까지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는 환경부가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임원에게 사표를 받기 위해 표적 감사를 하고 그 자리에 특정 인사를 앉히려고 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정부 인사 '찍어내기'에 이어 현 정부 인사를 낙하산으로 '꽂아넣기'까지 벌어졌다는 것이다.

한국환경공단 상임감사 교체와 후임 임명 과정을 단적인 사례로 검찰은 보고 있다. 환경부가 작성한 명단에 '사표 제출 거부 중'으로 표기됐던 김현민 전 감사는 "감사 압박에 못 이겨 지난해 3월 사표를 냈다"고 했다. 공단은 석 달 뒤인 6월 25일 상임감사를 새로 뽑는다는 공고를 냈다. 7명이 서류 심사에 합격해 면접을 봤지만 "면접 결과 적격자가 없다"며 전원 탈락 처리했다. 당시 공단 안팎에서는 친(親)정부 성향 전직 언론인 A씨를 상임감사에 앉히려다 서류 심사에서 탈락하자 전형 자체를 무효로 만들었다는 말이 돌았다. A씨는 상임감사에 탈락한 지 두 달 후 환경부 산하 한 공사가 설립한 회사의 사장에 임명됐다. 임원추천위원회는 4개월 뒤 상임감사를 재공모했는데 이 과정에서 '채점표 등에 대한 논의 사항을 비공개한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공단은 지난 1월 유성찬 전 노무현재단 기획위원을 환경공단 상임감사에 임명했다. 유 신임감사는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 환경 특보로 활동했었다. 검찰은 환경공단이 특정 인사를 상임감사직에 앉히기 위해 선발 절차를 바꾼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환경공단 상임감사 후임 임명 과정에서 '혜택을 본 사람'이 있는 것으로 보고, '혜택을 준 사람'까지 수사 선상에 올려놓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 장관이 최종 책임자일까

이런 낙하산 인사가 전적으로 김 전 장관의 뜻이었는지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김 전 장관은 작년 8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환경부의 산하기관 임원 사표 일괄 수리와 관련해 야당 의원이 "청와대와 상의했습니까. 장관의 판단입니까"라고 묻자 "임명 권한은 사실 제게 없다"고 답했다. "장관은 인사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예"라고 답했다. 청와대가 관련됐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답변들이다.

환경부 내부에서는 "블랙리스트라고 부르든 뭐라고 부르든 김 전 장관이 전부 책임질 일이겠느냐"는 반응이 나온다. 블랙리스트로 불리는 문건 작성을 김 전 장관이 보고받았다고 하더라도 단독으로 벌인 일은 아닐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만든 빈자리에 내려 보낸 낙하산 인사도 김 전 장관 혼자서 정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한 정부 관계자는 "장관이 바뀌면 산하기관 낙하산 인사는 늘 있었던 일인데, 김 장관이 원하는 인사와 청와대가 원하는 인사가 달라 마찰이 있었다고 들었다"고 했다.





[김효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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