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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한마디] 3·1절 행사 때 당시 사용했던 태극기 흔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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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필자의 할아버지는 경기도 고양군 용두리(현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서 독립만세운동에 나섰다가 일경(日警)에 체포돼 곤장 90대를 맞고 옥살이를 하셨다. 어린 시절, 해마다 3·1절이 돌아오면 할아버지는 어떤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셨을까 늘 궁금했다.

오는 3·1절 100주년을 앞두고 정부와 전국 지방자치단체, 기관들은 각종 기념식 및 전시회,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만세운동 중 "대한독립 만세!"를 외칠 때 흔드는 태극기는 당시 썼던 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태극기다. 특히 3·1운동을 다루는 공연의 경우, 일제 순사복과 총칼, 시위대 한복 등은 당시 모습을 재연하는 반면, 정작 가장 중요한 태극기는 1949년 10월 확정된 지금의 태극기를 사용하는 것은 아귀가 맞지 않는다.

태극기는 1882년 고종의 명을 받아 일본에 수신사로 다녀온 박영효가 만든 최초의 태극기를 비롯해 태극 문양과 괘, 색깔 등을 달리하는 여러 모양의 태극기가 전해지고 있다. 여러 역사적 현장에서 사용된 태극기는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민족애와 나라 사랑의 상징이었다. 다가오는 3·1절 행사 때 당시 쓰던 태극기를 널리 보급해 사용하면 선조들의 3·1 정신을 더 깊이 되새기는 기회가 될 것이다.

[최인태 세계국기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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