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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트럼프 ‘국가비상’ 승부수…재선 노림수에 위헌소송 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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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합의 예산안 서명 다음날 전격 선포

WP “논란 키워 지지층 결집·재선 시도”

하원, 소송·무효화 결의안·청문회 예고

시민단체들도 위헌소송 잇따를 전망

트럼프 “소송 예상했다…우린 이길 것”

사유지 수용, 대통령 권한남용 등 쟁점

걸프전, 9·11테러때 전례…그땐 의회 묵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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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적인 ‘국가비상사태’ 선포가 주말 미국 전역을 뒤흔들었다. 이번주부터는 날선 정치 공방과 법정 다툼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각)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강행을 위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전날 의회가 여야 합의로 예산안을 통과시킨지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서다. 미국에서 ‘안보 예산’을 이유로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것은 2001년 9·11 동시테러 이후 처음이다. ▶관련기사= 트럼프, 장벽예산 서명 뒤 ‘국가비상’ 선포 예고…민주당 “위헌 소송” 반발

앞서 14일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예산법안에 서명할 것”이란 소식을 전하면서 “대통령은 국경에서 국가 안보와 인도주의에 관한 위기를 중단시키기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포함한 다른 행정 조처도 취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의회가 장벽건설비용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57억달러를 대폭 삭감한 13억7500만달러를 배정한 예산을 통과시킨 데 대해, 의회 승인이 필요 없는 대통령 직권으로 국방예산을 장벽 건설에 전용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한 것이다.

그러나 이 때만 해도 트럼프가 실제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렸다. 민주당의 반발 뿐 아니라 백악관과 집권 공화당 안에서도 정치적 부담과 위헌의 여지가 크다는 자문과 우려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전격적인 국가비상사태 선포는 ‘장벽 건설’이라는 공약의 집행 뿐 아니라, 집권 중반기를 넘어선 시점에서 지지층 결집과 재선을 노리는 정치적 승부수로 풀이된다. <워싱턴 포스트>는 15일 “트럼프 대통령과 참모진이 장벽건설(을 위한 예산 확보)의 실패를 논란거리로 만들어 정치적 난국을 돌파하고 재선의 동력으로 삼으려 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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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과 시민사회는 즉각 위헌 소송을 제기하거나 예고하고 나섰다.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공동성명을 내어 “이건 명백한 대통령 권한 남용으로, 원하는 것을 헌법적 절차로 성취하는 데 실패하자 법의 울타리를 넘어섰다”고 비난했다. 앞서 전날 민주당 지도부는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전한 ‘비상사태 선포 예고’에 법적 소송으로 맞설 것임을 분명히 했었다.

민주당은 법정 다툼과 정치적 압박을 병행하는 ‘투 트랙’ 전략을 벼르고 있다. 하원의 제럴드 내들러 법사위원장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이번 금요일(22일)까지 비상사태 선포와 관련된 법적 문서를 제출해달라”고 요구하고, 백악관 법률자문과 법무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청문회 개최 방침도 통보했다. 하원은 또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무효화하기 위한 상하 양원 공동결의안 채택도 추진하기로 했다. 재적 의원의 3분의 2 이상이 결의안에 찬성하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국가비상사태 선포는 즉각 효력을 상실한다. 민주당의 의석 점유율이 54%인 하원은 물론, 집권 공화당이 다수(53%)인 상원에서 결의안의 압도적 채택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국가비상사태 선포에 회의적인 공화당 의원들을 포함해 단순 과반의 찬성으로 결의안이 채택되는 것만으로 트럼프 정부엔 상당한 정치적 압박이 될 게 분명하다.

멕시코와 접경했거나 인접한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네바다 주지사들과 뉴욕주 검찰총장 등 민주당 소속 정치인과 법률가들도 즉각 소송 방침을 밝혔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주 지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 “헛된 자만심 프로젝트”라며 “다행히, 트럼프의 말이 아니라 대법원 판결이 최후의 선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영리 시민단체 ‘퍼블릭 시티즌’은 15일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직후 맨 처음으로 워싱턴 디시(DC) 연방법원에 “트럼프 대통령과 국방부가 다른 목적으로 배정된 자금을 국경장벽 건설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멕시코 국경 지대인 텍사스주에서 장벽건설에 사유지가 강제수용될 처지인 토지 소유주 3명을 대리한 소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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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대 시민권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맹(ACLU)도 이날 성명을 내어 “일방적인 행정 조처에 대응해 주초에 법적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맹은 “국경에 국가비상사태 따위는 없으며, 대통령이 자신의 반이민 어젠다를 위해 또다시 불법적이고 위험한 ‘권력 움켜쥐기(grab)’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앞서 2016년 10월 대선 당시 트럼프 후보는 과거 “당신이 스타라면 뭐든 할 수 있다. 여성의 그 곳을 허락 없이 ‘움켜쥘’ 수도 있다”고 떠벌인 녹음 테이프가 공개돼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또다른 시민단체인 멕시칸아메리칸 법적보호와 교육기금(MALDEF)도 소송을 예고하는 등 이번주부터 미국 시민사회와 반트럼프 진영에선 국가비상사태 선포에 대한 소송이 잇따를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비상사태 선포가 위헌 논란에 부닥칠 것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슬프게도 우린 소송에 직면할 것이고, 법정 다툼을 벌일 것이고, 다행스럽게도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백악관과 공화당 내부에선 비상사태 선포가 부를 법적 시비와 역풍을 우려하며 이를 만류하는 자문과 의견이 만만치 않았었다.

<뉴욕 타임스>는 15일 “위헌소송의 쟁점은 사유지 강제수용(의 합법성), 국경지대 미국 원주민의 자치권,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 선포) 권한의 범위 등 세 가지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미국에선 1976년 국가비상사태법이 제정된 이래 지금까지 모두 58차례의 대통령 국가비상사태 선포가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미국 바깥 지역의 정치·군사적 위기 상황에서 적대 세력의 미국내 자산 동결이나 교역을 금지하거나, 공중 보건위생 위기와 관련된 내용이다. 의회의 예산 승인을 거치지 않고 다른 항목의 예산을 국방비에 긴급 전용하기 위한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전례는 단 두 차례 뿐이다.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인 1990년대에 이라크를 공격한 걸프전쟁, 그리고 아들 조지 부시 대통령의 집권 첫해인 2001년 9·11 동시테러 때이다. 그러나 이는 실제로 긴급한 전쟁 수행 자금의 편성을 위한 것으로, 의회의 제동을 받진 않았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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