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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박수빈 변호사의 연애는 계약이다]둘만의 은밀한 시간…연인이 든 카메라가 ‘악몽의 흉기’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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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의해야 하는 밀폐된 장소에 들어서면 본능적으로 주위를 살피게 된다. 일테면 공중화장실, 탈의실, 모텔과 같은 매우 개인적인 공간들 말이다.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누군가에 의해서 나의 개인적인 모습이 카메라에 ‘찍히는’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매번 신경을 곤두세운다. 심지어 내가 잠들었을 때 연인이 카메라를 들고 나를 찍지 않을까 두려움에 사로잡힌 일도 있다. 내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어도 믿기 어려운 그런 기분들이 엄습한다. 그런 기분이 드는 날엔 도무지 잠에 들 수가 없다.

연애관계에서 디지털성범죄(동의 없는 영상 및 사진촬영)는 주로 돌발적으로 일어난다. 성관계 중이나 옷을 탈의하는 도중, 나체 상태로 잠이 들려던 차에 연인이 갑자기 휴대전화를 꺼내 나의 허락 없이 나를 찍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보통은 “야, 하지 마”라고 말하고 삭제를 요구하는 것으로 끝나겠지만 사실 상대방은 이미 디지털성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런 상황에 닥치면 상대방에게 지금 네가 한 일은 범죄라는 것을 알려주고, 휴대전화를 받아 사진이나 동영상을 완전히 삭제했는지, 클라우드 등 자동으로 업로드되는 앱이 있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경찰에 신고하고 상대방의 휴대전화를 증거로 제출하면 임의로 사진을 삭제했더라도 충분히 복구할 수 있다. 불법촬영 범죄는 미수범도 처벌하고 있기 때문에 사전에 협의 없이 찍으려고 시도했으나 실제로는 찍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촬영에 동의하지도 않았는데 함부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연인의 행동을 통제하고 교정할 수 있을 것인지 여부에 따라 그를 신고하고 형사처벌할지, 사과하는 상대방을 믿고 일단 더 만나볼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경향신문

영화 <연애술사>(2005) 속 희원(박진희)과 지훈(연정훈)은 그들이 사랑했던 시절의 사생활이 담긴 영상이 시중에 떠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재회한다. 희원은 지훈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제안한다. 자신과 결혼하거나, 디지털성범죄를 저지른 불법촬영물 유포자를 잡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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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유포된 동영상의 당사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내가 잘못한 것은 없다

나와의 추억을 제멋대로 타인에게 유포한 그가,

연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역할을 배신한 그 사람이 잘못한 사람이고 범죄자다


가해자 측 사람들은 피해자에게 ‘꽃뱀’이니 하는 말로 공격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돈이 아닌 진정한 사과를 원한다’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진정한 사과는 충실한 손해배상으로부터 나온다


계약이 잘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서로가 계약상 의무를 다하고, 계약 상대방에 대해 불법적인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애에서도 불법을 행하는 사람과는 관계가 오래도록 유지될 수가 없다. ‘연인 사이니까’라고 허용될 범죄란 없다.

■ 서로 좋아서 촬영한 영상이라도 유포하면 범죄다

사랑했던 누군가와 함께 보내던 좋은 시간을 기록하고 싶어서 찍어놓은 촬영물이나 허락한 바 없지만 상대방이 마음대로 찍어놓고 삭제를 거부하고 있었던 촬영물이 있다면, 연인과 헤어질 때는 반드시 그 파일을 지워달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둘이 연인 사이로서 신뢰관계가 구축된 상황에서야 유포하지 않으리라 어느 정도는 믿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헤어짐을 앞에 두고 상대방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는 고민스럽다. 상대방이 만약 촬영물을 빌미로 연인이 나와 헤어지기를 거부하고, 가지고 있는 파일을 유포하겠다면서 협박한다면 어떻게 할까. 헤어졌다가도 다시 만나달라고 요구하며 그렇지 않으면 파일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다면 어떨까. 가혹한 시간이다. 협박이 두려워서 헤어지지 못한다면 과연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돈을 주면 삭제해줄까? 무릎을 꿇고 빌면 삭제해줄까? 형벌은 사후적인 것이므로 범죄를 처벌할 수는 있어도, 이미 범죄가 벌어지고 난 뒤 받은 피해에 대해 애초에 없었던 일처럼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협박을 받으면 겁이 나겠지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겁에 질리는 순간 피해가 커질 수도 있다.

■ 연애에서의 신의성실은 헤어져도 지켜져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촬영한 영상이 유포되는 일은 분명 불행한 일이다. 사랑했던 사람이 나와의 약속을 배신하고 이를 남에게 보여주었다는 사실이 주는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상처가 된다. 제3자가 나의 몸을 보며 불쾌한 상상을 하는 것에 당연히 혐오감과 역겨움이 치밀어 오를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 동영상을 보고 즐기는 인간 이하의 존재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동영상을 범죄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피해자에게 왜 그런 동영상을 찍었느냐고 묻는 문화에서 유포한 사람과 이를 함께 보는 사람들의 범죄행위를 비난하는 문화로 바뀌어가고 있다. 만일 유포된 동영상의 당사자가 된다 하더라도 내가 잘못한 것은 없다. 나와의 추억을 제멋대로 타인에게 유포한 그가, 연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역할을 배신한 그 사람이 잘못한 사람이고 범죄자다. 내가 만약 그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나는 나 자신을 책망하기보다 가해자의 배신과 범죄에 분노하고 그를 응징하기 위한 용기를 키울 것이다.

유포자는 나뿐 아니라 그 누구와도 연애를 할 자격이 없다. 연애란, 서로가 서로를 동등한 인간으로 인정하며 마음을 나누고, 서로에게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관계다.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은 헤어져서도 유지되어야 한다.

■ 응징은 처절하게, 손해배상은 확실하게

나라면 협박이 시작되는 순간 상대방의 협박사실을 녹취한다거나 메시지를 캡처해 놓는 방식으로 증거를 모은 뒤 상대방이 촬영물을 유포하지 못하도록 법원에 촬영물 유포금지 가처분을 신청하고, 상대방이 이를 위반할 경우 이행강제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또 내가 받은 정신적 충격에 대한 민사소송으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정말로 상대방이 촬영물을 유포할 경우에 대비해서 여성가족부 산하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에도 연락하고, 수사기관에도 경찰에 협박 및 성폭력범죄에 대한 특별법 위반죄로 고소장을 제출할 것이다.

촬영물 유포금지가처분이란, 법원에 상대방으로 하여금 촬영물을 유포할 수 없게 의무를 부과하는 결정을 받는 것인데, 상대방에게 의무위반에 따른 금전적 부담을 안겨 그 의무를 지키도록 간접적으로 강제하는 효과가 있다.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소송이란 상대방이 나에게 사회에서 ‘불법’이라고 부를 만한 나쁜 짓을 했고 그 행위로 인해 피해를 입었으니 손해를 배상하라고 청구하는 소송이다.

형사재판 과정에서 합의란 결코 없을 것이며 성폭력범죄 피해자로서 내게 주어진 권리에 따라 재판 과정에서 끊임없이 탄원서를 제출하고 발언기회를 얻어 피해사실을 호소할 것이다. 불법촬영뿐 아니라 찍을 때는 상호 합의한 촬영물이라도 무단 유포는 엄연히 디지털성범죄에 해당한다. 성범죄 피해자에게는 형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로서 진술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 있다.

■ 진정한 사과는 충실한 손해배상으로부터 시작

만약 협박을 넘어 상대방이 실제로 영상을 유포한다면, 나의 정신적 피해는 더욱 커지는 것이므로 민사소송에 청구한 소가를 더 올릴 것임을 알리고, 촬영물 유포금지 가처분에 따른 이행강제금도 모두 집행할 것임을 상대방에게 분명하게 밝힐 것이다. 그가 거래하는 모든 은행의 계좌를 가압류하고, 월세나 전세에 살고 있다면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도 가압류하고, 차가 있다면 차도 가압류하여 정말로 청구금액을 받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다. 가해자 측 사람들은 이를 두고 적반하장으로 피해자에게 ‘꽃뱀’이니 하는 말로 공격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돈을 원하는 게 아니라 진정한 사과’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진정한 사과는 충실한 손해배상으로부터 나온다. 잘못을 한 사람은 그에 합당한 금전적 피해보상을 포함한 사과를 해야 한다. 우리 법은 ‘손해’에 대한 배상을 ‘금전배상’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해가 났을 때 돈을 받는 것은 법적으로 지극히 너무나 정상적인 일이다.

어쩌면 ‘진정한 사과’를 실제로 받기까지 인생의 중요한 순간 몇 년을 소송만 하고 있게 될지도 모른다. 형사재판에서도 증인으로 불려나가야 할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정신적인 피로감뿐만 아니라 금전적인 압박도 상당할지 모른다. 쉽지 않은 여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물고 늘어질 것이다. 그 과정에 나와 연대할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게 허락된 모든 법적·제도적 방법을 총동원하여 법이 허락하는 한 가해자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형벌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민사적으로는 받을 수 있는 가장 많은 손해배상금을 받아내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가해자가 협박을 하는 시점에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알려줄 것이다. 용기를 내자. 적어도 내가 당신을 지지할 것이다.

▶필자 박수빈

경향신문

미학도로서 대학생활 내내 연극동아리 활동에 심취하며 살다가 로스쿨에 가 무대에 서는 배우 대신 법정에 서는 변호사가 됐다. 변호사가 된 첫해에 재단법인 진실의힘에서 <세월호, 그날의 기록>을 함께 썼고, 현재는 법무법인 청맥에서 일하며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민변 사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수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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