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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창작에 전념하세요”…김영하·편혜영 등 인기 작가들 ‘에이전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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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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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도 전문 에이전시를 통해 2차 저작권, 외부 행사나 강연 등의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국내 유일의 ‘작가 전문 매니지먼트’인 블러썸 크리에이티브에 소속돼 활동하는 소설가 김영하, 김연수, 김중혁, 편혜영, 배명훈, 김금희(왼쪽부터).

블러썸 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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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등 2차 저작권·방송 등 행사

기존 출판사 시스템선 감당 못해

작가들 ‘대행사’ 통해 교섭력 향상

‘블러썸 크리에이티브’ 국내 최초

출판계, 변화 인정 속 확산에 주목


소설가 김영하, 김연수, 김중혁, 편혜영, 배명훈, 김금희의 공통점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한국의 대표 작가들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이 또 하나 있다. ‘국내 유일의 작가 전문 에이전시’를 표방하는 블러썸 크리에이티브(Blossom Creative) 소속 작가라는 점이다.

블러썸은 작가 및 창작자들의 작품에 대한 영화·드라마화 등 2차 저작권, 방송 및 강연 등 외부 행사 업무를 담당한다. 송중기, 박보검 등이 소속된 블러썸 엔터테인먼트의 계열사다. 최근 소설 <곰탕>을 쓴 영화감독 김영탁과 <너무 한낮의 연애> 등으로 주목받는 소설가 김금희가 합류했다.

‘작가 에이전시’라는 말은 국내에선 낯설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출판사를 통해 2차 저작권 문제와 외부 행사 등을 처리한다. 작품이 출간되면 담당 편집자가 작가의 ‘매니저’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원 소스 멀티유즈’ 시대를 맞아 소설 등의 콘텐츠가 영화나 방송으로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독자와의 만남이나 외부 강연 등 행사가 늘어나면서 기존 시스템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들이 생겨났다. 또 오디오북, 전자책 시장도 확대되면서 작가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작가 에이전시’의 출현은 이런 출판 시장 환경의 변화를 반영한다.

“한국 출판사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영세하고, 편집자들이 2차 저작권 문제까지 관리하는 게 어려운 상황이에요. 편집자는 책을 잘 만들고 작가와 책에 대해 소통하는 사람인데, 부가적 업무까지 하려면 업무량이 과중하고 영화나 방송계를 잘 알지 못해 어려움도 겪습니다. 전문적인 에이전시가 생겨 업무가 세분화되고 전문화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소설뿐 아니라 음악, 영화, 그림과 관련해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소설가 김중혁은 블러썸 설립을 적극 제안했다. 김중혁은 “영화·연극·뮤지컬 등 2차 저작권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고 오디오북이나 전자책 콘텐츠의 저작권도 이슈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에이전시가 있으면 작품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SF작가 배명훈은 “글을 쓰는 것에만 집중하고 싶은데, 대외활동을 하다보면 협상이나 교섭을 해야 한다. 작가들은 개인으로 일하다보니 기관을 상대로 협상을 하는 게 어렵다. 전문 기관이 대신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출판사엔 작가가 많고, 신간이 나온 작가들을 우선적으로 챙기게 된다. 또 여러 출판사에서 나눠 책을 내기도 하는데 작가의 전체 작품을 대상으로 한 활동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블러썸은 작가별로 특성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방송 <알쓸신잡>에 출연하며 활발한 외부활동을 하고 있는 소설가 김영하는 에이전시 소속 매니저를 두고 스케줄 등 외부 업무 전반을 관리한다. 배명훈은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작품 기획을 공동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배명훈은 “영화화 등 2차 저작권을 염두에 두고 쓰는 책의 경우 작품 기획 단계에서 함께 논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기존에 출판사가 일괄적으로 담당하던 업무들은 영역별로 분화되고 있다. 유명 작가들은 해외 판권을 별도의 에이전시를 통해 관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한국인 최초로 ‘셜리 잭슨상’을 수상한 소설가 편혜영은 해외 판권은 KL매니지먼트를 통해 관리하고 있고, 2차 저작권은 블러썸을 통해 관리한다. 편혜영은 “해외 출판 에이전시가 생기면서 저작권을 전문적으로 영역을 나눠 관리해도 된다는 개념이 생겼고, 효율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출판계의 관행상 작가가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는 것이 쉬운 구조는 아니다. 인기 작가의 경우 여러 출판사와 사전에 작품 계약을 맺으면서 출판사가 에이전시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배명훈은 “작가들이 계약서를 변경하는 경우도 있지만 작가별로 교섭력이나 협상력이 달라 일일이 계약서를 수정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단편소설 ‘너무 한낮의 연애’가 지난해 10월 KBS에서 단막극으로 제작된 소설가 김금희는 지난 1월 블러 썸에 합류했다. 김금희는 “계약서가 전문적이고 복잡해 작가가 다 검토하기 어려운데 에이전시를 통하면 계약서 작성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서 “작가들이 비정규직이고 처우에 대해 의견을 내기 쉽지 않은데, 작가들이 불이익을 당하거나 곤란한 상황이 적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출판계는 ‘작가 에이전시’의 출현을 주목하고 있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작가의 원작을 갖고 활동할 수 있는 영역들이 늘어나고 있어 이런 것들을 책임져줄 기획사가 필요해진 것 같다. ‘작가는 작품으로만 말한다’는 고전적 정의는 수정되고 있다”면서도 “아직 변화를 체감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에이전시 출현으로 출판사가 에이전트 업무를 사업 영역으로 가져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시작됐다. 김소영 문학동네 편집국장(공동대표)은 “해외는 시장 규모가 크지만 국내 시장에서 작가 에이전시가 어느 정도로 활동 영역을 넓힐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이 영화로 제작된 소설가 정유정의 경우 출판사 은행나무에서 적극적으로 2차 저작권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백다흠 은행나무 편집장은 “작가가 작품에 매진하기 위해 2차 저작권 문제는 출판사에 위임하는 편이고, 작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최대한의 저작권료를 받아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6년 작가 매니지먼트 사업을 본격화한 블러썸 크리에이티브도 시장 확장에 고민하고 있다. 김진희 블러썸 크리에이티브 본부장은 “작가뿐 아니라 다양한 창작자들이 함께하길 원하고 있으며 소속 작가들이 협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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