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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북한 리스크 줄고 경상흑자 행진…“원화, 신흥국 통화와 차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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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 2년째 1100원 안팎…변동성 줄어

“신흥통화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는 평가 나와

한국 국채 부도위험지수도 영국·프랑스보다 낮아져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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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이 달라졌다. 한국 경제 둔화 전망에도 풍부한 외환보유액과 83개월째 흑자행진 중인 경상수지에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도 크게 해소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최근 2년간 안정적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 여파로 불안을 겪고 있는 다른 신흥국 통화와는 뚜렷이 차별화되는 모습이다. 금융·외환위기 때 급등했던 한국 국채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역사적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국제금융시장에선 원화가 “북한 변수에 출렁이는 변동성 높은 통화”라는 딱지를 떼고 선진 통화에 버금가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0일 서울외국환중개 자료를 보면, 은행 간 거래에 적용되는 일별 고시 매매기준율(시장평균환율) 기준으로 원-달러 환율은 최근 6개월간(8일 기준) 1100~1140원대, 최근 2년간 1050~1150원대 박스권에서 움직이고 있다. 변동성이 현저히 줄었다. 등락폭은 최근 3개월 25.9원(최저 1109.8원, 최고 1135.7원), 6개월 33.7원, 1년 84.9원, 2년 100.6원(최저 1057.6원, 최고 1158.2원) 등이다. 평균으로 보면 ‘안정세’가 더 뚜렷이 확인된다. 평균환율은 최근 3개월 1123.77원, 6개월 1124.37원, 1년 1105.93원, 2년 1112.64원이다. 평균선을 약간 오르내리는 작은 등락만 되풀이하고 있다.

원화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전통적으로 신흥국 통화로 간주돼왔다. 변동성 축소는 원화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있음을 뜻한다. 권민수 한국은행 외환시장팀장은 “작년 연초에, 또 10월 말 미국 금리 인상으로 신흥시장에서 달러가 빠져나가면서 신흥국 통화가 요동칠 때도 원화는 상대적으로 매우 안정적이었고, 신흥국에서 빠져나온 달러 중 일부가 미국으로 향하지 않고 한국으로 들어오기도 했다”며 “주요 선진국 통화와 비슷하게 움직이면서 ‘원화가 신흥 통화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는 얘기가 국제통화시장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아직 선진 통화로 공식 분류되는 건 아니지만 “신흥국 통화 중 안전자산”으로 인정받는다는 얘기다.

원화 가치 안정의 배경으로는 양호한 대외건전성 등 견고한 펀더멘털(기초체력)과 한반도 정세 변화가 꼽힌다. 외환보유고(1월 말 4055억달러)는 중국·일본 등에 이어 세계 8위다. 경상수지(2018년 750억달러)는 83개월째 흑자행진하고, 국내총생산 대비 경상수지 비율(2015~18년 연평균 6.2%)도 국가신용등급이 유사한 나라들에 견줘 상위권이다. 순대외금융자산 잔액(2018년 3분기 3408억달러)도 사상 최대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역사상 가장 양호한 외환건전성으로, 글로벌 금융불안이 국내로 쉽게 전염될 가능성은 과거에 비해 낮아졌다”고 진단했다.

국가신용도를 나타내는 한국 국채(5년물) 시디에스 프리미엄도 0.32%포인트(1월31일)로 사실상 역사적 최저치를 경신 중이다. 최근 1년간 세계 주요국 가운데 가장 크게 떨어졌고 영국·프랑스(0.36%포인트)보다 낮아졌다. 국제금융센터는 “양호한 펀더멘털에 북-미 정상회담 기대감 등이 반영되면서 안전자산으로서 원화 및 한국 채권의 가치가 부각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겨레

원-달러 환율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무렵 1208.5원(2017년 1월2일)에서 석달간 내려가(원화 가치 상승) 1112.5원(3월29일)까지 떨어진 뒤 2017년 말 북한 미사일 리스크가 해소되면서 더 강세를 보이며 8개월간 1000원대를 지속했다. 이어 지난해 6월 북-미 1차 정상회담을 전후해 달러 강세에 따라 1100원대로 올라섰다. 달러 가치 변동이나 북한 변수, 미-중 무역분쟁 등이 원화 변동성을 일으키는 주요인이지만, 변동폭은 크지 않았다. 한 시중은행 외환딜러는 “과거엔 ‘북한’ 말만 나오면 역외 환투기세력이 개입해 원-달러 환율이 큰 폭으로 출렁거리고 타이·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다른 아시아 통화들도 뒤따라 움직였는데, 최근엔 이와 정반대 양상”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아시아 신흥국 통화들이 크게 흔들리는 와중에도 원-달러는 “마지못해 움직이는”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변동성이 큰 통화라는 기존 통념에서 벗어나고 있는”(임지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이례적 현상이다.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 축소는 우리 경제에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근래 서울 외환시장에서 일하는 외환딜러들은 “답답하다. 재미가 없다”고 탄식한다. 변동성이 줄어 큰 매매차익도 손실도 없는 지루한 장세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외환딜러는 “1100~1140원대에 갇힌 지 약 6개월이다. 진폭이 좁아져 갑갑하다. 환율이 방향을 못 잡으면서 한쪽으로 베팅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단기의 환율 이동 평균선이 중·장기 이동 평균선을 뚫고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골든크로스나 데드크로스 같은 기술적 분석에 의존한 예측도 거의 무의미한 지경이다.

환율이 박스권에 갇힌 채로 안정적 흐름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은 수출·수입업자들의 민감한 시장 움직임에서도 드러난다. 요즘 수출기업은 환율이 1200원대 쪽으로 오르려 하면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즉각 시장에 내다 팔고, 1100원대 쪽으로 내려가는 듯하면 이번엔 수입업자가 수입대금 결제에 필요한 달러를 즉각 시장에서 사들이는 수요가 일어난다. 바야흐로 시장은 “위로든 아래로든 돌파 시도가 없는” 전례 없이 안정적인 원화 흐름에 놀라는 중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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