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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한겨레 프리즘]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 조계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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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조계완

경제팀 기자

“가수 조용필이 놀라운 건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겁니다. 어떤 가수는 주구장창 같은 노래만 부르는데 조용필은 끊임없이 한발씩 내딛습니다. 그게 혁신입니다.” 최근 이정동 신임 청와대 경제과학특별보좌관(서울대 공대 교수)이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한 얘기다. 과학기술·산업·국방·농림수산 등에 걸쳐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은 올해 총 20조4천억원이다. 2017년에 민간기업·공공연구기관·대학 등 국내 5만9603곳에서 연구개발에 쓴 돈은 총 78조7892억원(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으로 국내총생산 대비 4.55%(세계 1위)다.

정부 연구개발과제 수행의 성공률은 87.2%(산업통상자원부·2017년)다. 2011년엔 98.0%였다. 높아야 바람직할까? 물론 턱없이 낮으면 “헛돈으로 20조를 날렸다”는 개탄이 당장 나올 것이다. 성공률이 지나치게 높아도 “과제로 출제된 문제의 난이도가 너무 낮고 평이해 정작 우리 기업·산업이 필요로 하는 고도기술 개발은 못하고 있다”는 비효율이 다시 지적된다. 국가마다 성공률 통계를 대외비로 분류해 공표를 꺼리는 까닭이다. 이정동 특보처럼 ‘새로운 시도와 도전적 과제, 이에 따른 실패 경험의 축적’을 강조하는 쪽은 성공률이 20~40% 안팎으로 낮아져야 한다고 주창한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은 조금 다른 데 있다. 온갖 정교한 모형을 동원한 계량통계분석은 섬세하고 우아한 예술의 지위로까지 격상된다. ‘경영의 구루’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당신이 뭔가를 측정할 수 없다면 그것을 개선하거나 관리할 수도 없다”고 자주 말했다. 하지만 통계 자체는 ‘가치’를 함축하지 않는다. 부단한 새로운 도전과 실패 축적은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측정도 어렵지만, 의심의 여지 없이 일종의 경제적 ‘자산’이다. “과학은 창조하고 기업은 응용하며 인간은 적응하자”(193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 표어)는 이제 “과학은 창조하고 인간은 실패하며 기업은 (실패에) 적응하자”는 작풍으로 바뀌어야 한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의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디램·낸드 등) 시장점유율은 74.5%(2017년 3분기)다. 수요가 유지된다면 가격 하락을 어느 정도 방어할 독과점적 공급 지배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다. 하지만 저변에 있는 것, 가령 삼성전자의 성공이 기업가적 자질·용기보다는 유리한 법인세 구조, 국가 연구개발 혜택, 행운으로 작용한 정치·경제적 체제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할 자료를 통계는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런 ‘골치 아픈’ 대목들이 더 중요하다. 일국의 자원을 선택적으로 동원·투입했으나 ‘더 많은 사람들’에게 편익을 제공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 성공을 ‘사랑에 속고 돈에 우는’ 복잡한 심경으로 대면하게 된다.

한쪽에 자원배분 효율을 식별해내는 통계가 있다면, 다른 쪽에는 평등·민주 등 가치를 반영하고 표현한 법률·제도가 있다. 헌법 제119조 제2항은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 (중략)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총 19개에 이르는 중소기업 보호·지원법과 최저임금 인상의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절망적으로 낮았던 최저임금의 경우 인상률(퍼센트)이라는 ‘수의 무게’에 압도되고 있지만, 다음날 또 일하러 나가기 위한 노동력 재생산(최저생계) 보장은 그 가치다. 여러 영역마다 통계와 가치 이 둘 사이에서 ‘어려운 조합’을 찾아내는 유능함이 요청되는 때다.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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