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규
녹색정치 활동가
1995년 10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재임 중 비자금이 폭로되었다. 검찰은 4100억원의 비자금 조성을 밝히고 노태우를 구속하였다. 이후 12·12 쿠데타 및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요구가 거세졌다. 김영삼 대통령은 5·18 특별법 제정을 지시하고 역사 바로 세우기를 선언하였다. 국회는 여당인 신한국당과 국민회의, 민주당 3당의 합의로 ‘5·18 특별법’을 제정하였다. 1996년 4월, 대법원은 전두환 무기징역, 노태우 징역 17년을 확정하였다. 위헌 논란이 제기되었으나 특별법은 헌법재판소 합헌 판결을 받았다.
이념, 지역, 세대를 넘어 광주의 진실을 밝히려고 애쓴 수많은 이들 덕분에 보수정권 김영삼 정권에서 입법/행정/사법 3부가 공통의 합의점에 도달했다. 전두환의 민주정의당 후신인 신한국당이 여당 시절에 만든 5·18 특별법은 한국 보수의 최소 기준이자 국가기관의 5·18에 대한 판단 준거였다. 한나라당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퍼주기 논란을 거듭해도 5·18 북한군 개입설을 공식적으로 거론하진 않았다. 새누리당 시절 정치 기반인 대구·경북 광역단체장이 광주에서 열린 5·18 기념식에 참석하였다. ‘일베’류의 5·18 왜곡과 폄훼가 있어왔으나 그것이 한국당의 공식 입장일 수는 없었다.
그런데 2019년 2월8일, 국회에서 한국당 김진태·이종명 의원이 공동 주최한 논란의 5·18 진상규명 공청회가 열렸다. 김진태 의원은 지난 대선 당내 경선에 출마하여 19.3%를 득표하며 2등을 하였고, 다가오는 전당대회 당대표에 출마하는 한국당 주요 정치인이다. 원내대변인 김순례 의원은 유가족들을 ‘세금 축내는 괴물 집단’이라고 하였고, 이종명 의원은 ‘광주 폭동’을 말하였다.
한국당의 5·18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지금의 논란을 보수대통합으로 묶을 수 있는가. 어느 사회나 민주와 반민주 경계의 극우는 존재한다. 그런데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하는 극우가 주류가 되는 것은 위험하다. 유럽의 정치 선진국에선 민주적 보수정당이 극우가 아닌 민주적 진보정당과 연립정권을 한다. 5·18에 대한 입장 차이는 보수대통합으로 묶을 수 없다. 김영삼과 지만원이 공존할 수 있는가. 승자독식 선거제도 때문에 극우와 갈라설 수 없다면 솔직하게 고백하고 국민의 심판을 받으시라. 선거제도개혁 최대 방해 정당의 업보다.
한국의 참된 보수의 시작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역사 ‘그림자’에 놓인 이들의 희생에 공감하는 데 있다. 호남 차별과 희생을 공감할 수 없는 정당이 주류 보수여선 안 된다. 수십만 광주 시민 중에서 설령 북한 간첩 한두 명이 끼어 있다면 대체 뭐가 달라지는가. 한국당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책임이 달라지는가. 극우 역사학계 연구의 자유와 주류 정당의 책임은 다른 문제다. 왜곡된 사실관계에 매몰되다가 자신들의 원죄와 책임을 피할 것인가. 한국 보수정당의 운명이 달렸다.
민주당은 이런 일을 예방하는 정치구조를 만드는 데 힘써주시라. 승자독식 선거제도와 양당 체제에선 극우가 주류 보수정당의 외피 안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한국당 내의 극우를 없앨 수 없다면, 그들을 변방으로 내몰아야 한다. 지지율과 의석수를 일치시키는 선거제도 개혁은 극우와 보수의 분화를 촉진하고, 광주가 지키고자 했던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일이다. 민주당이 선거제도 개혁에 소명을 지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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