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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유레카] 최교일과 다르게 스트립쇼 바라보기/ 안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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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의 스트립쇼론이 심화 과정으로 접어들었다. 처음 폭로가 나왔을 때만 해도 “무희들은 있었으나 스트립쇼는 아니었다”고 하더니, 이제는 “상반신까지만 노출이 허용되는 곳이었다”고 한다. 말을 바꿨다기보다 구체화한 것이다. 요는 스트립쇼의 범주이고, 허리가 그 경계선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상반신 노출은 ‘스쇼’인가 ‘스트쇼’인가.

최 의원은 검사장 출신답게 시종 ‘합법’을 강조한다. 스트립쇼에 관한 미국법에도 정통한 듯하다. 일반인들은 스트립쇼 하면 ‘공연음란죄’부터 떠올린다. 여기서 말하는 공연(公然)이 ‘공공연하다’라는 뜻인 것도 모른다. 음악, 무용, 연극 따위의 공연(公演)으로 착각한다. 잊지 말자. 자우림의 노래 가사 따라 “신도림역 안에서 스트립쇼를” 하면 불특정 다수 앞에서 공공연히 음란 행위를 한 바바리맨처럼 공연음란죄로 처벌될 수 있다. 반면 유흥접객업소의 스트립쇼에는 ‘풍속영업규제법’이 적용된다.

폭로자의 주장대로 최 의원이 “(미국) 문화 체험을 위해” 스트립 바에 갔다면, 번지수 하나는 제대로 찾은 셈이다. 오늘날의 스트립쇼 형식은 1920년대 미국에서 첫선을 보였고, 1930년대부터 ‘스트립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뉴욕을 중심으로 나름 하위문화의 장르로 자리잡았다. 그가 2016년 출장 간 그곳 말이다. 물론 그런 역사를 알았더라도 그가 허리를 경계로 하는 치안적 관점에서 벗어났을지는 의문이다.

스트리퍼는 많은 영화와 소설에도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최인호의 소설 <겨울 나그네>의 제니는 기지촌 클럽의 스트리퍼다. 일본 인기 드라마 <심야식당>의 마릴린(안도 다마에), 지난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어느 가족>의 아키(마쓰오카 마유)도 같은 일을 한다. 이들이 보여주는 캐릭터와 삶의 서사는 최 의원의 남루한 관점을 아득히 초과한다.

이들이 하나같이 여성이라는 사실도 놓쳐선 안 된다. 실직한 남성들이 스트리퍼가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 <풀 몬티> 정도가 예외다. 현실에서는 이 영화의 모티프였던 ‘치펀데일 쇼’ 말고 없다. ‘선비 정신 세계화’에 힘쓰는 이답게 최 의원은 스트리퍼라는 성중립적인 표현 대신 일관되게 ‘무희’(춤추는 여자)라는 고색창연한 표현을 쓴다. 덕분에 우리가 스트립쇼를 성인지적 관점에서 성찰할 수 있게 된다면 고마운 일이다.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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