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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아파트 정자·숲 속 놀이터… 모두 생활학습의 장” [차 한잔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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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광명서 ‘민들레꽃처럼 마을학교’ 이끄는 김영숙 교장 / 남편과 사별… 공부 시작 계기 / 평생학습 공동체 만들기 나서 / 할머니들은 민요, 주부는 요리… / 재능기부 확산… 나눔 온기 나눠 /“배움 통해 삶의 희망 찾았으면”

지난해 하반기 경기도 광명시는 상복이 터졌다. 시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15회 대한민국평생학습대상에서 특별상을, 제6회 대한민국평생학습박람회 동아리 경진대회에서 장려상을 각각 받았다. 또 평생학습터인 ‘느슨한 학교’가 유네스코의 지속가능발전교육 공식프로젝트로 공식 인증됐다.

공교롭게도 이들 상은 모두 ‘하안 13단지 아파트’와 연계됐다. 특별상은 이 아파트단지의 다른 이름인 ‘하안 그린 마을’에 대한 평가였고, ‘느슨한 학교’는 이 아파트의 ‘민들레꽃처럼 마을학교’에 붙여진 또 다른 이름이다.

하안 13단지는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이곳에는 ‘민들레꽃처럼 마을학교’ 교장 김영숙(71·여)씨가 산다. 김 교장은 교육기관에서 임명한 교장이 아니다. 평범한 이 마을 주민으로 민들레꽃처럼 마을학교를 운영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10일 “민들레 마을학교를 찾아온 외부인들이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학교는 어디에 있어요?’”라며 “‘마을 전체가 학교예요’라는 답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면 혼자 웃는다”고 말했다.

세계일보

‘민들레꽃처럼 마을학교’ 김영숙 교장이 10일 아파트단지 내 정자, 숲 속, 놀이터, 공터, 아파트 거실 등 어디나 교실이 될 수 있는 평생학습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민들레꽃처럼 마을학교는 건물이 있는 일반 학교가 아니다. 단지 내 있는 정자, 숲 속, 놀이터, 공터 등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나 교실이고 교육장이 되는 건물 없는 학교형태다. “예를 들어 정자나 공터에 모인 분들이 무언가 해보고 싶다고 하면 마을 강사나 재능기부자를 불러줘 원하는 것을 바로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구조입니다. 할머니들은 민요를, 주부들은 요리를, 장애인들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주로 화제로 올리는 데, 그곳에 이미 확보한 재능기부자나 전문가를 보내 앎을 전문화해 주는 방식입니다”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아파트단지 전체가 생활학습 공동체의 장이다. ‘느슨한 학교’는 건물도 없고 정해진 교육시간이나 정규 선생님이 없어 붙여진 이름이다. 학교 이름에 ‘민들레꽃’을 붙인 것은 이 마을의 특성과 비슷해서다. “하안 아파트단지는 영구 임대아파트단지로 정부의 철거민 정책에 의해 전국에서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든 곳입니다. 지금도 관내 취약계층의 30% 정도가 모여 사는데, 그들이 척박한 곳에서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홀씨를 퍼뜨리며 분신을 키워내는 민들레처럼 끈기와 의지, 희망을 잃지 말라고 붙인 이름”이라고 풀어줬다.

‘하안 그린마을’의 공동체 생활학습의 장으로 성장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김 교장은 “2014년 술병과 쓰레기, 고성이 난무하던 아파트단지를 돌며 평생학습을 통한 마을 공동체 형성을 외치고 다니자 주민들이 ‘시에서 얼마나 받길래 저러지’라며 비아냥과 눈총을 줬습니다. 하지만 1년쯤 지나자 뒤에서 수군대던 사람들이 먼저 인사를 하고 차를 대접하는 등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오늘에 이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교장이 평생학습공동체 ‘전도사’로 나선 것은 우연에서 시작됐다. 나이 50이던 1998년 남편의 병간호 등 가사를 위해 직장을 그만둔 그는 남편이 사망하자 엄마로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때 우연히 신문에 딸려온 전단에서 본 게 일어수강생 모집 글귀였다.

“주민센터에 가보니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았어요. 다른 학습자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공부했는데 예기치 않던 시련이 다가왔습니다. 2기 수강생 모집 때부터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 강좌를 접어야 할 위기에 처했고, 결국 3기 때 신청자 부족으로 폐강이 됐습니다.”

하지만 김 교장은 광명시에서 막 시작한 ‘평생학습센터’를 찾았고 거기서 강의실을 확보했다. 이어 스스로 수강생을 모집하고 일본 다문화가정 출신 강사도 직접 섭외해 동아리를 만든 뒤 아예 일본어 강좌를 운영했다. 발군의 노력 덕분에 2005년 학습센터가 구성한 32개 학습동아리 연합회의 회장에 선출됐다. 국내 최초였다.

동아리연합회장을 맡아 광명시 평생학습의 틀을 닦은 그는 평생학습이 뿌리내려야 할 마지막 단계가 ‘마을’이라고 판단, 2014년 회장직을 내려놓고 자신이 살고 있는 하안 13단지 아파트단지로 돌아갔다. 이어 손가락질로 맞이했던 주민들을 묶어 13개 공동체를 구성하고, 이 공동체를 중심으로 국내외의 주목을 받는 느슨한 학교, ‘민들레꽃처럼 마을학교’를 탄생시켰다.

이런 이력으로 김 교장은 2016년 광명시의 ‘평생학습 주춧돌’에 뽑히는 등 2006년부터 최근까지 14차례에 걸쳐 평생학습 관련 표창과 공로패를 받았다.

수원=글·사진 김영석 기자 lovek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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