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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칼럼] 안병학의 세상이야기 "포장마차에 사연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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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뉴스

안병학 칼럼니스트 도시에 가로등이 하나둘 밝히고 휘황한 네온사인이 도시를 유혹하면 거리로 나서는 사람들 발걸음이 무거워 보이는 사람, 가벼워 보이는 사람, 멈추어 있는 사람 등 사람들의 엉키는 발걸음만큼 도시는 저마다의 사연을 담은 발자국이 아스팔트를 닳게 한다. 비스듬한 언덕의 포장마차에서 새어 나오는 어묵 국물의 진한 MSG 냄새와 닭똥집 굽는 연탄재 타들어가는 냄새가 뒤엉켜 사람의 발걸음을 머물게 한다.

주인아주머니의 빠른 손놀림으로 안주를 굽고 등받이 없는 긴 의자엔 도시에 지친 사람들이 작은 유리 소주잔에 얼굴을 묻고 있다.

포장마차는 가볍게 한잔을 나누는 오래된 단골들의 정착지이고 주인아주머니와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고스란히 뱉어내는 그런 술자리다. 서민들의 애환이 서려있고 마주보는 낯익은 얼굴들과 스스럼없이 술잔을 부딪칠 수 있는 만남의 자리이기도 하다.

옆 사람이 고등어구이를 시키면 또 옆에서는 제비추리 구이를 시켜 함께 안주를 들며 나누다 보면 어느덧 내 술병 네 술병이 없는 막역한 친구가 된다.

포장마차는 그런 사람들이 교감을 나누고 세상살이를 늘어놓는 자리이며 고향을 물으며 고향 자랑과 고향의 향수를 달래가며 객지의 서러움을 폭 넓게 해방 시킬 수 있는 한풀이 장소이기도 하다. 가끔은 주인아주머니의 서비스 술 한 병이 취하기도 하고 주인아주머니에게 한 잔술을 권하는 격의가 실종되고 보편적인 여유가 나를 편안케 하는 자리이다. 난 그래서 포장마차를 찾는다.

포장마차는 고차원적인 정치가 있고, 자본이 오가는 경제가 있고, 티브이 드라마의 연속극이 있고, 모두가 잘 배운 높은 학력의 교육이 있고, 예의 없는 사회를 질타하는 도덕이 있다. 포장마차는 또 문학인이 되기도 한다. 시인이 있고 소설가가 있고 수필가가 있어 나름의 기질을 발휘하곤 한다. 포장마차는 철학과 사상이 있다. 칸트가 있고 스피노자가 있고 헤겔이 있고 니체가 있고 마르크스가 있고 엥겔스가 있다.

포장마차는 정치가 있다. 여당과 야당으로 나누어 치열한 논쟁을 하고 얼굴을 붉히며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을 욕하면 주먹다짐 까지 가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또 포장마차는 자식자랑을 아낌없이 하기도 하지만 자식에 대한 원망도 거리낌 없이 하는 자리여서 사람들의 동정을 받기도 한다.

포장마차는 또한 과거가 있다. “왕년에 내가” 하면서 과거에 자신이 잘 나갔다는 사실을 은연중 과시를 하거나 허풍을 떠는 사람도 있지만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업을 하건 농촌에서 많은 농토를 가지고 농사를 짓던 빚보증과 과도한 확장으로 몰락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과거를 회상 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자신을 포장마차에서 풀어 놓을 수밖에 없다.

포장마차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선한 눈동자의 우리 이웃이다. 포장마차 안에서 훈훈한 정을 부대끼게 하고 마주치는 술잔의 넉넉한 웃음은 사람이 나누는 길이 무언지를 알려 주기도 한다.

포장마차를 오면 생각이 늘 남아 있는 곳은 성남 태평동의 80년대 포장마차가 마음언저리에 맴돈다. 살아계셨으면 나의 아버지 연세쯤 되었을 박 사장님은 이 포장마차에서 닭발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기울이던 그 모습이 너무도 간절하다. 성남은 서울에서 둥지를 틀지 못하고 서럽게 쫓겨난 사람들이 눈물로 정착된 지역이다. 박사장님 역시 대방동에서 공장을 하다 실패하고 성남의 작은 공장에서 혼자 도급을 맡아 일하는 그런 분이었지만 한참이나 어린 사람들과도 격의 없이 술잔을 나누는 마음씨 넓은 대범한 분이었다.

박 사장님은 일이 끝나면 언제나 태평동 포장마차의 점찍어둔 자리에 지정석을 만들고 닭발을 안주삼아 너털웃음을 지으며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말없는 세월을 지휘하고 있었다. 밤이 깊어가고 카바이트 불빛이 포장마차를 수놓으면 일에 지친 거뭇한 사람들이 포장마차에서 한잔 술에 고단함을 내려놓는다.

태평동 그 포장마차는 가지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잔술에 어묵국물로 목을 축이는 사람들도 있었고 가치담배로 희부연 담배연기를 허공에 날리기도 하였다.

포장마차엔 모 가수가 히트 친 유행가 “포장마차”를 틀어놓고 지나가는 사람을 유혹하기도 한다. 그렇게 포장마차는 삶의 질곡에서 희망이라는 단어 하나라도 부둥켜안으려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쉼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약속의 장소이기도 하다.

요즘은 그런 서민의 애환을 담은 포장마차는 도시미관을 헤친다는 이유와 주변 상점들의 집요한 로비로 단속대상이 되고 지정된 장소 외에는 포장마차를 열수 없도록 되어 갈등도 많이 발생하곤 한다.

난 초겨울의 포장마차를 유독 좋아했다. 넓적한 낙엽이 말라 비틀어져 휑하니 도시의 아스팔트를 덮고 때 이른 찬바람이 북녘하늘에서 불어오면 옷깃을 여미고 포장마차에 들어선다. 끓어 넘치는 어묵국물 소리를 쫑긋거리며 국물 한 접시에 이른 추위를 피하고 소주 한잔에 마음 놓이며, 한해가 가려고 바동거리는 세월의 밧줄을 부여잡은 사람들의 표정이 안쓰럽지만 사연 많은 초겨울의 포장마차가 좋다.

사람들은 포장마차에서 술에 취하고 사연에 취하고 거리가 주는 낭만에 취한다. 크리스마스 즈음이 되면 거리에 캐롤송이 연말 분위기를 자극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포장마차도 주인이 나지막이 틀어주는 캐롤송에 연말을 삭힌다. 그러나 지금은 거리의 캐롤송은 자취를 감추었다. 저작권료의 문제가 도시를 삭막하게 하고 분위기를 가라앉혀 마음 둘 곳 없는 사람들의 분위기 까지 앗아가 버린 지극히 돈 중심의 폐해를 거리에도 만들었다.

밤이 이슥해지면 포장마차의 불빛은 하나둘 꺼지고 취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포장마차 주인의 가게정리 하는 소리가 뒤엉킨다. 때론 큰소리로 싸우는가 하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포장마차 밖에서 쓰러지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도시의 포장마차는 사연담은 사람들의 해우소가 되며 비틀거리는 삶의 지팡이가 된다.

-안병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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