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야치 서훈-기타무라 등 채널 '불통'
총리와 관방장관,양국 넘버2만 유일 협상파
딸기 농가 출신, 자수성가형 정치인 스가
막말 고노에 호통, 강성 아베 말리며 조율
MB땐 이상득, 박근혜 땐 이병기 물밑 활약
이 총리, 수시로 청와대에 "신중 대처"전달
#. 박근혜 정권 초기에 취임한 이병기 주일대사는 아베와의 핫라인을 뚫는 게 목표였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복심이자 넘버2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관방장관이 타깃이었다. 만나는 일본인마다 "누가 스가 장관과 친하냐"를 묻고 다녔다. 이 전 대사는 스가 장관과 가장 가깝다는 언론사 논설위원, 또다른 지한파 인사까지 낀 비공식적인 만찬을 대사관저에서 열었다. 이후 이병기와 스가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깊숙한 얘기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이 전 대사가 서울로 돌아갈 때 스가 장관은 회견에서 “1년 동안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대단한 힘을 기울였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6월 총리관저에서 열린 아동학대방지대책 관계각료회의에 출석한 스가 장관(오른쪽 첫째),그 왼쪽이 아베 신조 총리. [사진=지지통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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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문제를 고리로 가동됐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전보장국장 라인도 단절됐다. 지난해 9월엔 서훈 국정원장이 도쿄에서 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 내각 정보관과 만났지만, 은밀하게 비공식적으로 이뤄지는 정보기관 수장들의 만남은 한계가 있다. 일본 외무성 간부는 “정의용-야치 라인은 역할을 못하고 있고, 서훈-기타무라 간 교류는 북한 문제로 제한돼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1일 '왕위계승식전 사무국'현판식에 나란히 참석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오른쪽)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왼쪽).[사진=지지통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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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도쿄에서 위안부 재단을 주제로 양국 외교 차관 회담이 열렸을 때 이 대사는 시즈오카현 대학 강연을 이유로 도쿄를 비웠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총리까지 참석하는 리셉션에도 가장 늦게 나타난다”며 일본 일각에서 불만을 드러냈다고 한다. 이 대사가 취임 15개월 만인 지난달 스가 장관과 처음으로 오찬을 한 것을 두고도 “지금까지는 도대체 뭘 한 거냐”는 주장이 나온다.
아베 외교는 '톱 다운' 외교의 전형이다. 아베와 트럼프, 아베와 시진핑, 아베와 푸틴 간 1대1 승부로 모든 게 결판난다. 외무성이 아닌 관저가 주도하는 외교다. 그런데 관저는 한·일 관계에 대해 자포자기적 상황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일본내 최고의 외교 전문가로 꼽히는 한 전직 언론인은 중앙일보에 "야치 국장과 가네하라 노부카츠(兼原信克)관방부장관보(국가안전보장국 부국장 겸임,주한일본대사관 공사 출신) 등 관저의 두 외교 사령탑이 한국과의 관계 개선엔 손을 놓아 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총리관저에서 양국 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미련을 갖고 있는 사람은 지난달 ‘일본 정부 내의 정확한 기류를 알려주고 싶다’며 이수훈 대사를 만난 스가 관방장관뿐"이라고 했다.
"징용 재판은 폭거"라고 거친 말을 쏟아내던 고노 다로(河野太郎) 외상에게 화를 내며 뜯어 말린 사람도 스가였다고 한다. 한국에 대해 늘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아베 총리를 제어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과거 국회에서 "각료들의 야스쿠니 참배가 뭐가 문제냐. 그 어떤(한국 등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다"며 흥분했던 아베에게 스가 장관이 따끔하게 주의를 준 에피소드도 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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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보면 일본 정계가 한통속으로 보일지 몰라도, 아베 내각에서 6년 넘게 관방장관 자리를 지키는 스가는 일본 정치의 이단아다. ‘세습 정치인’이 즐비한 권력 핵심부에서 그는 몇 안되는 자수성가형이다.
낙후지역인 동북부 아키타(秋田)의 딸기 농가 출신으로 농사 짓기가 싫어 고교 졸업후 무조건 상경했다. 쓰키지(築地) 어시장 짐꾼, 경비원, 신문사 심부름 직원, 카레 식당 주방 보조 등의 아르바이트로 호세이(法政)대 법학부를 졸업했다. 국회의원 비서관과 지방의회 의원을 거쳐 국회에 입성했다. 관방장관으로 있으면서도 오전 7시~8시, 정오~오후 1시, 저녁 7시~8시30분, 밤 8시30분~10시 등 하루 4번 사람들을 만난다. 지난달 16일 이 대사와의 오찬도 그렇게 성사됐다. 그 오찬에서 스가 장관은 경직된 양국 관계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징용 판결에 대해 자민당에선 '한국인 비자면제 폐지','보복 관세'주장이 나오지만 관저가 의외로 차분한 건 스가 장관 때문"이라고 전했다.
현대·기아자동차 기술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이낙연 국무총리.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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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양국의 '넘버 2' 두 사람이 이같은 행보를 '로 키'(low key·낮게 억제)로 해야할 정도로 예민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국민 감정은 이미 상할 대로 상해 있다. "정부 대변인 스가의 역할엔 한계가 있다", "이 총리도 결국 청와대와 국민여론의 대세를 따를 것"이란 회의론 속에서 이들이 돌파구를 만들어 낼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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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감 상실한 한일 의원연맹
양국간 소통의 위기는 한ㆍ일의원연맹(일본 측은 일·한의원연맹)의 위기이기도 하다. 이 단체는 1972년 출범 뒤 단순한 친목을 넘어 양국 관계가 궤도를 이탈하지 않도록 막후 조정력을 행사해 왔다. 하지만 최근엔 갈등 증폭의 현장이 돼버렸다.
지난해 1월 도쿄 제국호텔 중식당에서 “위안부 합의 문제는 당혹스럽다. 국가 대 국가의 약속은 착실히 이행하는 게 국제적인 상식이다”(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위안부 합의는 불가피하게 조정될 수 밖에 없다. 나도 변호사 출신이지만, (변론을 할때)피해자의 의견을 충분히 듣지 않으면 변호사가 해임된다”(송영길 한ㆍ일의원연맹 부회장)며 설전이 오간 게 대표적이다.
」지난해 1월 도쿄 제국호텔 중식당에서 “위안부 합의 문제는 당혹스럽다. 국가 대 국가의 약속은 착실히 이행하는 게 국제적인 상식이다”(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위안부 합의는 불가피하게 조정될 수 밖에 없다. 나도 변호사 출신이지만, (변론을 할때)피해자의 의견을 충분히 듣지 않으면 변호사가 해임된다”(송영길 한ㆍ일의원연맹 부회장)며 설전이 오간 게 대표적이다.
구조적인 이유도 있다. 일본측은 보수정당인 자민당이 주축이다. 정권 교체 뒤 한국 측 주축이 된 더불어민주당과의 궁합이 어색할 수 밖에 없다. ‘아베 절대 1강’체제에서 일본 의원들이 한국에 유화적 태도를 취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외무성 한국 담당출신인 기우치 미노루(城內實)의원이 “우호관계는 서로 약속을 지키는 것이 전제”라며 탈퇴하는 등 소속 의원 수도 줄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 12월 서울에서 열린 연맹 총회에 메시지조차 보내지 않았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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