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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 (수)

[인스파이어] K팝 댄싱퀸…전세계 천 만명을 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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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정아ㆍ유은수 기자, 신보경 PD] 서울 논현동 골목길에 있는 오래된 건물. 태권도, 미술학원이 세든 2층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난데없이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로 재잘재잘 수다 떠는 소리가 난다. 초등학생부터 40대까지 나이와 성별, 국적을 불문하고 사람들이 바삐 들락날락하는 통에 늘 붐비는 곳. 댄스 기획사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이하 원밀리언)다.



전 세계 1300만여 명이 원밀리언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고 있다. 5%만 한국인이고 나머지 95%가 외국인이다. 원밀리언의 유튜브 채널 누적 조회수는 31억 뷰를 넘어섰고 국내 개설된 유튜브 채널 중 광고수익은 5위에 달한다. 그에 비해 사무실과 연습실은 작고 아담했다.

2014년 설립된 원밀리언에는 저마다 개성을 지닌 18명의 안무가가 소속돼 있다. 댄스 수업은 물론이고 K팝 안무 제작, 광고, 뮤직비디오, 뮤지컬 공연까지 한다. 미국, 독일, 프랑스, 폴란드, 일본 등 22국에 찾아가 댄스 워크숍도 열었다. 원밀리언 댄스 수업을 듣기 위해 한달간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는 소피아(22)는 “매일매일이 꿈만 같다”고 말했다.

원밀리언 공동대표이자 트와이스의 ‘TT’, 선미의 ‘가시나’, 아이오아이의 ‘너무 너무 너무’, 엄정화의 ‘엔딩 크레딧’ 등 유명 K팝 안무를 제작한 스타 안무가인 리아킴(35)을 지난달 19일 만나 인터뷰했다.

그는 찡끗 웃어보이며 “원밀리언이 누구나 편하게 와서 즐겁게 춤추다 가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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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밀리언 수업중인 리아킴 모습 [사진 신보경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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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나는 춤 해야겠다, 언제 감이 왔나요.

“학교 다닐 때 잘하는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중3 때 TV로 마이클 잭슨 내한 공연을 봤는데 가슴이 터질 것 같았어요. 아버지를 졸라서 동네 청소년문화센터에 댄스 수업을 등록했는데, 다이아몬드 스텝을 배웠던 수업 첫날 번개맞은 줄 알았어요. 몸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느꼈던 거예요.”

나이 열여섯. 리아킴은 베란다 유리문을 거울 삼아 줄곧 춤 연습만 했다. 그리고 고3이 되던 해, 그는 부모님께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ㅡ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게 두렵진 않았나요.

“다들 한다고 하니까, 라는 걸 의식 안 하는 편이예요. 어머니께서는 너 죽고 나 죽자며 반대했어요. 그래서 대학가면 들어가는 비용과 대학을 안 가고 춤을 배워서 벌게 될 금액을 계산해 보여드렸어요. 스물한 살까지 춤, 영어만 배울 수 있게 투자해 달라. 그 다음부터는 내가 알아서 벌어먹고 살겠다고 했어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그렇게 반대했던 부모님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말씀하셨어요.”

ㅡ 당시 춤 연습은 얼마나 했나요.

“20대 초반에는 춤 연습하느라 잠 거의 안잔 것 같아요. 대학 간 친구들보다 더 노력해야만 더 잘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대학 간 친구들이 몇 시에 일어나고 학교에서 얼마나 공부하는지를 의식하고 스스로 시간관리를 했죠. 그런데 저는 그때 참 재밌게 놀았다 생각해요. 춤추는 게 정말 즐거웠어요. 8시간 동안 밥은커녕 물도 안먹고 춤만 춘 적도 있어요.”

ㅡ 한 가지에 몰두하는 성격인가 봐요.

“맞아요. 제가 하나에 딱 집중하면 그 안에서 밖으로 빠져나오는게 너무 힘들어요. 제가 상상했던 장면을 춤으로 끄집어내지 못하면 끙끙 앓으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될때까지 완벽하게 연습하려고 해요.”

ㅡ 그래서 어떤 춤을 배웠나요.

“팝핀, 락킹, 재즈, 힙합, 왁킹. 다 배웠어요. 국내에서의 최고로는 모자라다. 내가 전 세계를 제패하겠다. 이런 마음으로 욕심껏 했어요.”

나이 스물둘. 리아킴은 꿈에 그리던 세계대회(2006년 스트리트 댄스 세계대회 락킹 부문)에서 1등을 거머쥐었다. 그런데 그는 “딱 3일이 지나니까 공허함이 크게 밀려왔다”며 “그런 상태로 해가 거듭되니까 공황장애에 시달렸다”고 했다. 갑자기 손과 발이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몸이 얼어붙어 무대 위에서 춤을 추지 못하기도 했고 예정돼 있던 워크샵을 열지 못하고 30여 명의 댄스 수강생 수업료를 전액 환불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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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중인 리아킴 모습 [사진 신보경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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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최고가 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1등이라는 자리를 지키는 것이라는 사실이 저를 괴롭혔던 것 같아요. 스스로를 옭아맸던 거죠. ‘뺏겼다’, ‘한물갔다’ 이런 소리에 제 마음과 정신이 다 뺏기고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전부가 아닌데.”

ㅡ 최고가 전부가 아니라고 느꼈던 거죠.

“네, 그러다 어느 날 유명 안무가가 세계 투어를 하는 영상을 보고 충격받았어요.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추는데 정말 행복해 보이는 거예요. 나는 이제 더 이상 먹을 욕도 없고 무시당할 것도 없겠다, 그렇게 바닥을 치고 나니까 오히려 춤을 편하게 출 수 있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던 시기였어요. 그때부터는 남들한테 인정받는 춤이 아니라 내가 진짜 추고 싶은 나만의 춤을 추기로 했어요.”

ㅡ 춤, 그 자체로 행복해했던 10대의 리아킴으로 돌아간 날이네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느끼는 대로 진심을 다해 추는 것, 그게 제일 멋있는 춤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날 길거리에서 트로트 음악에 흠뻑 취해 춤을 추는 할아버지를 봤는데, 할아버지가 춤의 맛을 알고 계신달까. 영혼 없이 비트에 따라 빠르게 추는 춤보다 그 할아버지의 춤이 진짜 멋있었어요. 기억이 선명하게 나요.”

그리고 리아킴은 5년전 원밀리언을 회사를 설립했다. ‘백만 명을 춤추게 하겠다’는 뜻이다.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인 춤이 아닌, 모두 함께 즐기는 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이 담겼다. 그래서 원밀리언에는 입시반이 없다. 스타일이 서로 다른 안무가의 수업을 자유롭게 선택해 춤을 배우는 식이다. 초심자를 위한 비기너(Beginner) 수업도 있다. 리아킴은 “춤은 경쟁이나 상하 개념이 아니다”라며 “춤은 그냥 즐겁고 재밌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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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기너 수업 중인 리아킴 [사진 신보경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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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비기너 수업을 직접 하신다고요.

“초심자에게는 춤을 오래 춰서 춤을 충분히 잘하는 사람들한테 느껴지지 않는 엄청난 에너지가 있어요. 사실 너무 완성돼있는 사람들은 춤에 대해서 솔직하지 못해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어떤 동작이 멋있어 보이는 건지, 잘하는 건지 몸이 잘 알고 있는거죠. 그런데 춤을 처음 접하는 분들의 몸에는 어떤 룰이 없어요. 그래서 흥이 주체가 안 돼서 막 이게 터져 나오는 느낌이 표정으로 드러나요. 체면 이런 거 상관없고 진심을 다해 즐기는 모습이 저한테 더 많은 영감을 주는 것 같아요.”

ㅡ 지금 리아킴의 꿈은 뭔가요.

“나는 댄서야. 나, 힙합이야. 너네 이해 못 해? 훗. 약간 이런 거 있잖아요. 이런 우월주의에 많이 빠진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생각해요. 춤은 즐기기 위해서 있는 건데. 그래서 저는 춤에 대한 매력을 더 알 수 있게 최대한 먼저 다가가서 손잡고 가르쳐주는 사람이고 싶어요. 그리고 언젠가 춤 마카레나처럼 몸을 움직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안무를 만들고 싶어요.”

ㅡ 원밀리언이 어떻게 기억됐으면 좋겠나요.

“평범한 직장인인데 괜찮나요? 나이 많은데 괜찮나요? 이런 옷 입고 가도 괜찮나요? 정말 많이 물어보세요. 전부다 괜찮아요. 우리가 맥도날드 갈 때 내 나이가 몇인지 옷을 어떻게 입었는지 신경을 안 쓰잖아요. 편안한 마음으로 춤을 배우고 즐기러 가는 곳, 맥도날드 같은 곳. 그곳에 원밀리언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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