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자전거 타는 무리들
“혼자 있으니 비켜달라” 요구
수영 강습반 운영비 안 내자
수영장에서 교묘히 소외해
요가, 헬스클럽 가서도
너무 친해지는 사람들
‘여럿’이란 이유로
홀로에게 ‘배려’ 종용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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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아줌마~ 좀 비켜요!”
실제 결혼을 했든 안 했든, 뒤에서 힐난하듯 목소리 높여 부르는 “아줌마” 소리에 기분 좋을 리가 없다. 지난해 봄,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따릉이’ 이용료 1년치를 결제하고는 몇번 타러 나가지 못했다. 봄날에 기분 좋게 자전거를 타고 개천을 누비고 싶었지만, 단체 라이딩을 하며 F1(국제포뮬러원대회·국제자동차연맹이 주관하는 자동차경주 대회)에라도 나온 듯 ‘쌩’하고 앞질러 나가는 무리에게 기분 나쁜 추월을 당한 뒤로는 왠지 자전거를 타러 나가기가 꺼려졌다.
자전거 타기에 최적화된 옷과 헬멧을 장착하고 비싼 자전거에 올라타 선수처럼 쌩쌩 달리는 라이더들은 보통 밤에 다 같이 한강을 달린다. 운동 겸 산책 목적으로 슬렁슬렁 기어 나와 낡은 따릉이의 페달을 천천히 굴리는 1인 여성은 그들의 가속도 앞에 귀찮은 걸림돌일 뿐이다. 좁은 자전거도로의 옆면에 붙어서 눈치껏 자전거를 타다가도 그렇게 몇번 단체 라이더에게 ‘구박’을 받고 나면 심하게 주눅이 들었고, 여기에 게으름이 깃들자 점차 자전거 타러 나가는 날이 줄어들었다. 결국 1년간 따릉이를 사용한 기록은 스무번이 채 되지 못했다.
시간이 나거나 마음이 동할 때 혼자 훌쩍 나가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을 하는 등의 운동은 ‘나와의 약속’을 잘 지킬 수 있다면 자유를 즐기기 좋은 운동법이다. 클래스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 아무 때나 내키면 시작하고 끝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혼자’이기에 미루기도 쉽다. 그런데 여기에 ‘혼자’이기에 길에서 더 만만한 사람이 된다니! 이건 생각지도 못한 방해 요소였다. 이건 자전거를 탈 때뿐 아니라 조깅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무리 지어 있는 사람들은 혼자 있는 사람에게 ‘배려’를 요구하곤 했다. 마치 혼자 밥 먹으러 갔을 때 여럿이 온 사람을 위해 자리를 옮겨줘야 할 때처럼 단체 조깅족을 위해서도 혼자인 사람은 길을 비켜줘야 했다.
사람들은 여럿이 있을 때 왜 목소리가 커지고 자신감이 올라가고 행동 과잉이 되는 걸까. 혼자 있는 사람은 당연히 여럿이 있는 사람을 위해 길을 비켜주거나 테이블을 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번도 아니고 여러번, 단체 라이더에게 ‘비키라’는 고성을 듣고 난 뒤 나는 ‘왜 혼자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건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길 위가 아닌 실내운동을 하면 혼자서도 괜찮을까.
수영장 회식 안 가도 운영비 내라고?
헬스장이든 수영장이든 여럿이 공간과 물품을 공유하다 보면 처음 간 사람은 기존 질서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혼자서 운동을 시작한 사람에게 기존 질서는 더욱 격하게 적응과 복종을 강요한다. 이건 몇년 전 지방 구립 수영장에 등록하고 다녔을 때 일이다. 수영복, 수영모와 수경만 개인이 갖추면 되는 줄 알고 처음 수영장에 간 날, 나는 초급반에 이미 그룹이 지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은 처음 온 신입에게 반갑게 인사하더니 대뜸 ‘반 운영비’를 요구했다. 수영장에 이미 수강료를 낸 나로서는 또 돈을 내야 한다는 게 의아했는데 그들은 “원래 다 내는 거예요. 어차피 다 같이 먹을 건데”라고 나를 설득했다. 사실 얼마 안 되는 돈이었지만 어차피 회식을 안 갈 생각이었던 나로서는 돈을 더 낼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이때부터 불거졌다. “저는 수영 끝나고 회식 안 갈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더니 반의 대장 격인 분이 나에게 “회식을 안 가더라도 원래 내는 거다. 이게 다 선생님을 위한 일”이라며 다시 돈을 요구했다. ‘구립 수영장이라 선생님이 월급도 조금만 받고 고생하시는데, 우리라도 챙겨드려야 한다’는 게 그분의 논리였다. 5천원과 1만원 사이, 얼마 안 되는 돈이었다. 수영을 배우다 보면 말을 섞고, 서로 교류가 생길 수밖에 없었기에 사람들과 불편해지지 않으려면 일종의 교류비라 생각하고 내면 그만일 수도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소심한 성격에 그냥 내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땐 그런 일에 넌더리가 나 있을 때라 오기로라도 버텼다.
반의 다른 사람들은 둘, 혹은 셋이서 친구끼리 함께 다니는 사람이 많았기에 그때부터 나는 완전히 고립되었다. 5천원을 절대 내지 않겠다고 버티며 엄마 또래의 어른과 싸우는 나에게 어린 친구들이 말했다. “언니, 그냥 내고 말아요. 저희도 회식 안 가는데 그냥 냈어요.” 사람들이 나를 교묘하게 소외하기 시작했고 나는 수영장을 그만두고 말았다. 호흡법도 어렵고, 팔을 교차로 움직이는 게 뭔지도 안 익는 마당에 나는 물 밖에서조차 숨쉬기가 고단해지고 말았다. 강습료는 돌려받지 못했다. 5천원을 내고 강습을 한달 다 채워서 받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유수영 시간에조차 느리게 수영하는 사람 뒤에서 “여기는 원래 우리 레일”이라며 강짜를 부리는 일을 몇번 당하고 나니, 그냥 수영장이라면 지긋지긋해져버렸다.
혼자 있다는 이유만으로
비슷한 일을 헬스클럽에서 겪거나 목격한 적도 있다. 6개월, 1년 단위로 헬스와 사우나 통합 상품을 결제한 사람들 사이에선 금방 무리가 지어진다. 한 동네에 살며 같은 사우나와 헬스클럽에 다니는 사람들은 금방 친해지고 이들은 이내 사우나와 탈의실을 점령하고 도시락(다이어트 메뉴, 고구마, 바나나, 주전부리)을 까먹고, 신발장과 탈의실을 자기 개인 용품으로 점거한다. 요가를 배우러 가서 정말이지 조용히 요가만 하고 싶은데, 서로 너무 친해진 같은 반 사람들의 수다 때문에 명상이나 동작에 집중할 수 없었던 사례는 또 얼마나 많은가. 왜 우리는 명상을 하러 가서조차 혼자에 집중할 수 없는 것일까.
물론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 새로운 커뮤니티에 들어가고 싶어서 무언가를 배우러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학교나 직장 밖에서 새로운 인맥을 만드는 데 독서토론회나 댄스팀에 가입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사람을 사귀고 싶어서가 아니라 정말이지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서 그곳에 간 사람도 있다. 단체 생활에서 ‘배움’에만 집중한다고 해서 ‘인싸’(인사이더·외향적이고 친구가 많은 사람을 일컫는 유행어)가 되지 못한 ‘아싸’(아웃사이더·무리에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유행어) 취급을 받는 일은 왠지 좀 억울하다.
그러니까 가운데 자리에서 뛰고 있을 때 “저희 나란히 운동하고 싶은데 자리 좀 옮겨주시겠어요?”라고 정중함을 가장해 배려를 종용하지 말아주시길…. ‘혼자’ 있다고 해서 제가 ‘여럿’을 배려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늘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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