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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묻고 답하다] 김영훈 교수 "보건의료 남북교류는 '생명의 끈'을 잇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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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의료격차 독일통일 당시의 5배…이념 초월해 교류해야"

"미래세대에 건강한 한반도 물려줘야…'감염병 핫라인'도 절실"

연합뉴스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 운영위원장 김영훈 고려대 의대 교수



(서울=연합뉴스) 전성옥 논설주간 = "남과 북의 의료격차가 심하게 벌어져 있습니다. 남한은 풍요로 인한 만성병이 문제가 되고 북한은 기아 상태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이 질병으로 겪는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보건의료 교류는 남과 북이 갈라져 7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끊어져 있던 '생명의 끈'을 다시 잇기 위한 것입니다."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 운영위원장을 맡은 김영훈 고려대 의대 교수는 "보건의료 분야에서 남과 북이 지속가능한 협력의 틀조차 없다는 게 너무 부끄럽다"면서 "미래 세대에게 '건강한 한반도'를 넘겨주기 위해서라도 보건의료 분야의 남북교류는 절실하다"고 말한다.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은 비무장지대(DMZ)의 목함지뢰 폭발사건으로 남과 북의 긴장 상태가 고조되던 2015년 8월에 창립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화약고 같은 남북관계 속에서도 비정치적인 영역의 교류협력이 필요하며, 보건의료를 통해 막힌 담을 허물고 화해의 물꼬를 트자는 데 뜻을 같이하는 의료인들이 중심이 됐다. 일방적인 약품 또는 의료장비의 지원보다 북한 주민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보건의료 분야의 인재 양성에 목표를 두고 있다.

김 교수는 "남과 북의 의료분야 협력은 단순한 인도적 지원 차원에서만 볼 일이 아니다"며 "남과 북을 가리지 않고 한반도 전체에 번질 수 있는 감염병을 예방하고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한 '감염병 핫라인'은 정치·군사적 핫라인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보건의료 분야의 남북교류 필요성은.

▲ 남과 북의 보건의료 격차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 한쪽은 풍요가 넘쳐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이 문제가 된다. 다른 한쪽은 기아 상태에 허덕이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열악한 보건의료 환경으로 인해 겪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30년 전만 해도 북한이 무상의료체계 덕에 남한보다 사회적 여건이 앞서 있었다. 이후 남한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지만, 북한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북한은 수술실을 비롯해 마스크, 장갑 등 기본적인 의료장비마저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이런 북한에 '약을 주자', '병원을 지어주자'고 하면 '그쪽 정권에서 해야 하지 왜 우리가 해야 하느냐'고 하는 이들이 있다. DMZ 넘어 북쪽을 딴 세상으로 여기고 있다. 남북이 분단된 지 7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지속해서 이어져 온 '생명의 끈'이 없다는 게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 부끄럽다. 보건의료의 남북교류는 끊어진 이 끈을 다시 잇는 일이다.

-- 감염병 문제는 남북이 공동으로 풀어나가야 할 현안이다.

▲ 보건의료 분야에서 남과 북이 교류하고 협력해야 할 또 다른 이유다. 남과 북은 한반도라는 조그만 생활터전을 공유하고 있다. 남북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곤충이나 동물을 매개로 하는 전염병에 무슨 이념이 있겠는가? 감염병은 인류 역사에 미친 영향이 크다. 스페인 병사들이 퍼뜨린 천연두로 인해 잉카제국의 인구 700만 명이 몰살하고 50만 명만 살아남았다. 마찬가지로 메르스와 같은 독한 전염병이 방역체계가 허술한 북한으로 유입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질 수 있다.

남한 주민들의 큰 관심사인 미세먼지만 해도 그렇다. 미세먼지의 10% 정도는 북에서 넘어오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속에 발암성 물질이 함유되어 있다. 이런 문제들을 남북의 보건의료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같이 고민해보자는 거다. 보건의료는 남북이 공생하기 위한 교류다. 통일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얘기하자는 게 아니다.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건강한 한반도'를 만드는 노력을 기울이자는 것이다.

-- 남북교류 방안이라면.

▲ 우선 추진해야 할 게 남북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드는 일이다. 보건의료협정이 그중 하나다. 동서독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20년 전에 보건의료협정을 체결했다. 협정에 따라 서독은 의료분야에서 700억 달러를 동독에 지원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통일 당시 동서독 간 의료격차가 매우 커서 이를 해소하는데 큰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남북의 의료격차는 동서독의 차이보다 5배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남북보건의료협정을 위한 관련 법안이 세 번째 발의돼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속도감 있게 추진해 남북이 보건의료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

감염병이나 대규모 재난 상황에 남북이 공동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DMZ나 개성공단 내에 질병관리본부와 같은 남북 공동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는 인체 감염병 외에 동물 전염병인 구제역과 AI 등도 남북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감염병 핫라인'을 구축해야 한다. 남북한 어느 한쪽에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역학조사 결과 등 정보를 교환하고 공동대처 방안을 논의할 감염병 핫라인은 정치·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핫라인 못지않게 중요하다.

-- 북한 주민의 건강상태는.

▲ 남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북한은 어느 정도 출산율이 유지되고 있는데, 산모의 70%가 영양결핍이다. 그러다 보니 5세 미만의 영유아 사망률이 남한보다 14배나 높다. B형이나 C형 간염 등에 걸린 건강하지 못한 산모를 통해 영유아가 수직 감염되는 질병도 많다.

결핵 유병률은 남쪽이 10만 명당 약 80명인데 북쪽은 560~600명이다. 기생충은 주민의 90%가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도 인분을 비료로 쓰기 때문이다.

분단 후 오랜 세월 동안 환경이 바뀌면서 남북한의 질병 패턴이 달라졌다. 북한은 기생충과 박테리아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남한은 바이러스 질환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질병은 쉽게 정복이 가능하다. 결핵박테리아가 대표적이다. 영양 보충해주고 좋은 약을 제때 잘 쓰면 어렵지 않게 물리칠 수 있다. 기생충도 마찬가지다.

--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의 목표와 역할은.

▲ 보건의료 분야의 인재 양성에 목표를 두고 있다. 의약품이나 의료장비 등 물적 지원은 한계가 있다. 북한의 보건의료 문제점을 스스로 진단하고 스스로 해결해나가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인재를 뽑아 길러 내는 길뿐이다. 북한 내 인재 양성과 보건의료 분야의 문제 해결을 뒤에서 도와주는 게 우리 재단의 역할이다. 진료과목별로 최소 5명씩의 북한 인재를 길러내려고 한다.

첫 사업은 평양과학기술대 의학부 설립이다. 평양과기대는 남한의 비영리 기구인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이 과학기술과 경영 분야의 인재 양성을 위해 북한과 협력해서 2009년 개교했다. 2016년에는 우리 재단의 지원으로 의학부와 치의학부가 만들어졌다. 대학원 과정으로 수료 기간이 3년이다. 의학과와 치의학과 졸업생 가운데 30명을 뽑았다.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제대로 지원을 하지 못해 아직 첫 졸업생을 배출하지 못했다.

탈북자 의료인 양성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탈북자는 3만2천여 명에 달하는데 이중 남한에서 면허를 다시 따서 활동하는 보건의료인은 60여 명밖에 안 된다. 실태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지만, 보건의료 분야 출신 탈북자 가운데 15% 정도만 남한에서 면허를 재취득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재단의 노력으로 최근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탈북자 외과 전문의 1호를 배출했다.

-- 그 밖의 활동이라면.

▲ 남북의학용어사전 편찬을 추진 중이다. 남북의 언어는 분단의 시간만큼 차이가 있다. 의학 등 전문용어는 일반용어보다 간극이 더 크다. 남북의 의료진과 환자들이 만난 자리에서 진단과 치료, 예방에 대해 막힘없이 논할 수 있어야 한다. 의학용어사전은 남북의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나서 공동으로 편찬하게 된다. 이를 위해 최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과 함께 지난달 '남북의학용어사전 편찬 사업 추진을 위한 포럼'을 개최했으며 조만간 북한 보건의료 전문가들과 논의할 예정이다.

영양 상태가 열악한 북한 어린이들의 발육을 돕기 위해 '두유 프로젝트'도 운용 중이다. 북한의 나진·선봉지역 영유아 5천 명에게 두유를 공급해주는 사업이다. 두유를 먹은 어린이들이 먹지 않은 어린이에 비해 키 크기가 4~5cm나 차이가 났다. 1년에 6천만 원의 사업비로 이런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근 기부하는 단체와 개인이 크게 늘었다.

※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 운영위원장을 맡은 김영훈(61) 고려대 의대 교수는 보건의료 분야의 교류가 이념이나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남북을 잇는 가교 구실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도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교류협력의 틀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김 교수는 자신의 사회적 활동 가운데 10%는 북한 의료분야에 헌신하기로 스스로 다짐했다. 고려대 안암병원장(2014~2016년)을 역임했으며 2016년부터 대한부정맥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sungo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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