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정부는 매년 세금이 얼마나 들어올지(세입) 전망한 뒤, 여기에 맞춰 나랏돈 지출(세출) 계획을 짠다. 세입이 전망보다 너무 모자라면 써야 할 데 못 써 난리지만, 너무 넘치면 쓸데없이 세금을 거둬들였다는 얘기다. 지난해 나라 살림은 너무 넘쳤다. 그것도 25조원이나. 정부가 국민ㆍ기업 호주머니를 털어 정부 곳간을 넘치도록 채웠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기획재정부가 8일 발표한 ‘2018 회계연도 총세입ㆍ총세출 마감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국세 수입은 293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세입예산(268조1000억원) 대비 25조4000억원(9.5%)의 초과 세수가 발생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경제 전망이 틀리는 것처럼 세수 예측 또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액수가 너무 큰 데다 4년 연속 틀렸다. 초과 세수 규모는 2015년 2조2000억원, 2016년 9조9000억원, 2017년 14조3000억원에서 지난해 25조4000억원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해마다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등 땜질 정책을 반복하는 것도 세수 예측을 잘못해서다. 정부의 ‘세수 추계 모형’이 잘못됐을 가능성이 있다.
초과 세수 문제를 꼬집는 것은 세금을 적정 수준 이상으로 걷으면 민간 영역이 위축되기 때문이다. 돈은 정부보다 민간에서 돌아야 경제에 활력이 생긴다. 특히 지난해는 생산ㆍ투자ㆍ고용이 역대 최악으로 나빠졌다. 경기가 뒷걸음질하는데 민간으로 갔어야 할 재원을 정부가 가져갔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재정 건전성을 지키려는 정부의 ‘보신주의’가 경제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며 “경기가 고꾸라지는 상황에선 나라 곳간을 지키기보다 파격적인 감세, 재정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제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할 정부가 수년째 세수 예측에 실패하자 세수 전망 무용(無用)론까지 나온다. 김학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예측도 어느 정도 벗어나야지 25조원은 너무 심한 ‘오답’”이라며 “이런 식이라면 세수를 예측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꼬집었다. 그런데 기재부는 4년째 “세수 추계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는 앵무새 해명만 내놓고 있다.
정부 말대로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경제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버는 것만큼 쓰는 것도 중요해서다. 세수 예측이 정확해야 미리 적정한 지출 규모ㆍ시기를 정해 재정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정부가 세금을 제대로 쓸 수 없다면 차라리 세금을 줄여 민간에 돌려주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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