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웨이스트-①]일회용컵 규제를 넘어, 필환경시대가 왔다…'제로웨이스트샵 지구'는 어떤 곳?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위치한 제로웨이스트샵 지구 모습./사진=한민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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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님이 가게로 들어와 중앙에 놓인 바나나 송이에서 바나나 한 개를 따고, 500원을 지불한다. 또 다른 손님은 천연 세정제 '소프넛'을 저울에 올려 무게를 재고 있다.
이곳은 서울 상도동에 위치한 '제로웨이스트샵 지구'. 1g(그램) 단위로 견과류를 팔고, 다회용 빨대·플라스틱 포장 없는 샴푸바 등을 파는 가게다. 3년 전 생긴 서울 성수동 '더 피커'에 이어 국내에서 2번째로 생긴 제로웨이스트샵이다.
제로 웨이스트(Zero-Waste)는 생활 속에서 배출되는 쓰레기를 최소화(0) 하자는 사회적 운동이다. 쓰레기를 표현하는 다른 단어(litter, garbage, trash, rubbish 등) 대신 'waste'를 쓴 이유는 이 단어가 '낭비'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적으로 플라스틱컵, 비닐봉지 등 썩지 않아 불필요한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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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 없는 소비를 꿈꾸는, '제로웨이스트샵 지구' 가보니…━
김아리 제로웨이스트샵 지구 대표./사진=한민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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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제로웨이스트샵 지구'를 운영하는 김아리 대표(29)를 만났다. 이 가게의 기능은 크게 3가지. △1인 가구를 위한 그로서리(Grocery·식료품점) 역할 △제로웨이스트 지향 생활용품 판매 △카페 등이다.
1g 단위로 견과, 곡물 등을 판매한다. 봄부터 야채, 과일도 1개씩 팔 예정이다. 1인 가구는 식재료를 조금씩 구매해 음식물 쓰레기를 최소화할 수 있다. 플라스틱 없는 문구류, 주방·샴푸 비누, 천 주머니·그물망 등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제로웨이스트 물품도 있다.
음료 판매는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제로웨이스트를 접하게 하기 위함이다. 개인컵으로 테이크아웃 시 1500원이나 할인해준다. 하지만 다회용컵만을 고집하진 않는다. 대나무, 옥수수, 재생종이로 만들어 생분해 되는 재질의 일회용컵도 있다. 시중 테이크아웃 컵보다 10배 더 비싸지만 김 대표는 이 컵을 택했다.
그는 "와서 원하는 일이 안 된다고 느끼면 누가 다시 오겠냐"고 반문했다. "처음에는 일회용컵을 아예 안 썼지만, 주민들이 거부감을 갖기 보다는 가게에 자주 오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일회용컵을 가져다 놨지만, 자주 온 사람들은 이제 알아서 개인컵을 가지고 온다"고 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위치한 제로웨이스트샵 지구 모습./사진=한민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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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제로웨이스트샵을 방문하는 고객과 동네 주민의 비율은 반반 정도. 그는 "처음에는 그저 '카페가 새로 생겼다'고 인식하더라. 오셔서 구경하면서 '아 이렇게 있구나' 신기한다"며 "연령대가 청년부터 60대 주민까지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은 커피와 마실 포장지 없는 견과류 한 줌을 사며, 제로웨이스트를 알아가고 있는 단계다.
김 대표가 추천하는 제로웨이스트 실천의 첫 걸음은 손수건 휴대하기다. 김 대표는 맑은 표정으로 "흔히 친환경 생활습관으로 추천 하는 '에코백'과 '텀블러'는 생각보다 들고 다니기 쉽지 않다"며 "손수건은 부피도 덜 차지해 편하고, 사용할 일이 많아 성취감도 있다"고 강조했다. 면 손수건 5개 정도를 구비해, 양말을 빨 듯 세탁기에 돌리면 보관도 쉽다.
김 대표는 제로웨이스트가 활성화되기 어려운 이유로 '낮은 관심'을 꼽았다. 제로웨이스트 물품을 찾는 사람이 많을수록 가격도 싸지고, 벌크(bulk) 포장으로 쓰레기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예를 들어 미니멀리즘은 취향의 문제라면, 제로웨이스트는 대중들이 너르게 실천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며 "80년대 시작된 한살림 운동처럼 지금부터 제로웨이스트 운동이 일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관련 법규를 제정하는 게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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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친환경 물결'…"필환경시대,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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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 단속을 하루 앞둔 지난해 8월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손님들이 유리컵을 사용해 커피를 마시고 있다./사진=김창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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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의 말처럼 국내에서 소비자들이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 시점은 단연 '일회용컵 규제' 이후다. 지난해 8월부터 환경부가 카페 매장 안 일회용컵 단속을 본격화하자, 대부분의 카페가 매장 내 다회용컵 사용을 지키는 추세다.
이와 더불어 프랜차이즈 카페에선 자발적으로 빨대 없는 리드(lid·뚜껑), 종이 빨대, 텀블러 할인 제도 등을 도입했다. 일부 개인 카페에서도 △일회용컵 미취급 △다회용 빨대 사용 △다회용 용기·에코백 할인 제도 등을 실천하고 있다.
제로웨이스트 매거진 쓸(SSSL)에 따르면 국내 제로웨이스트 카페는 지난해 10월 기준 총 20곳이다. 서울 연남동에 위치한 카페 '얼스어스'의 경우, 개인 다회용 용기를 가져오지 않으면 케이크나 음료를 포장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자영업자 부담 가중 △다회용 컵 설거지 등 업무량 증가 △규제의 무용성 등을 근거로 '일회용컵 규제'가 탁상행정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지만, 동시에 규제로 인해 "플라스틱을 쓰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개인적으로 텀블러를 들고 다니거나, 물건 구입 시 비닐봉지를 받지 않는 등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필리핀 마닐라 인근 프리덤섬에 쌓인 쓰레기 모습./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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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쓰레기와 그로 인한 생태계 파괴로 인한 전 세계적 흐름이다.
북태평양 하와이와 미국 캘리포니아주 사이 생긴 '쓰레기 섬'의 면적은 약 155만㎢(제곱킬로미터). 한반도의 7배 수준이다. 해양 쓰레기로 바다 동물들의 뱃속에선 비닐봉지와 풍선 조각이 빈번히 나온다. 특히 해양 생태계 전반에서 발견된 미세 플라스틱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상태다.
이에 프랑스는 2020년부터 플라스틱 컵·접시, 비닐봉지 등 썩지 않는 일회용품을 금지하기로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시애틀, 마이애미비치도 플라스틱 빨대를 금지했다.
쓰레기 처리도 날로 어려워질 전망이다. 전 세계 재활용 쓰레기의 절반가량을 수입하던 중국은 지난해부터 재활용품 24종의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태국도 2021년부터 플라스틱 재활용 쓰레기의 수입을 전면 금지할 계획이다.
제로웨이스트는 피할 수 없는 생존 법칙이 됐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2019'에서 '필(必)환경시대'를 언급했다. 그는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는 단지 '하면 좋은 것'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으로 변하고 있다"며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민선 기자 sunnyda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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