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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트럼프의 ‘지각 국정연설’, 갈라진 미국 정치 또 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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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실업·감세 등 자랑하며 국경장벽 재강조

“경제기적 중단시키는 복수·징벌 정치 거부”

러시아 스캔들 수사는 “당파적 조사” 폄하

공화당 “USA!” 연호…민주당 반응은 썰렁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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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 밤(현지시각) 상·하원 합동회의장에서 한 국정연설에서 “초당파적 협력과 화합”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가 말한 협력과 화합은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을 비롯해 자신의 국정 방향을 합리화하고 야당의 견제를 폄하하는 내용이어서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 쪽의 반응은 싸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위대함을 선택하기’라는 주제로 한 연설의 초반 상당 부분을 반세기 만의 최저 실업률과 에너지 산업 활황, 감세와 규제 완화 등 경제 치적을 자화자찬하는 데 할애했다. 그는 “모든 시민에게 놀라운 삶의 질의 향상이 눈앞에 있는 만큼 보복과 저항, 징벌의 정치를 거부해야 한다”며 “미국에서 일어나는 경제적 기적에 유일하게 제동을 거는 것은 어리석은 전쟁들과 정치, 터무니없는 당파적 조사들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 “남부 국경에 단순히 철제 장벽을 세우는 것만으로 도시들을 안전하게 만들고 수많은 시민들의 목숨을 구한다”며 “협력하고 타협해서 미국을 안전하게 만드는 협상을 성사시키자”고 촉구했다.

2016년 대선 당시 자신과 러시아 쪽의 유착 의혹에 대한 특별검사의 수사 등을 경제에 해가 되는 시도라고 깎아내리면서, 민주당이 적극 반대하는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을 강행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힌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경장벽 건설을 둘러싼 민주당과의 대립으로 사상 최장(35일)을 기록한 연방정부 셧다운(부문 업무정지)을 의식한듯 “우리는 위대함과 교착 상태, 결과와 저항, 비전과 보복, 놀라운 성취와 무의미한 파멸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며 “오늘 밤 나는 의회에 위대함을 선택해주길 요구한다”고 압박했다.

80분간의 연설 내내 공화당 의원들은 수시로 기립박수를 치고 환호하며 “유에스에이(USA)”를 외쳤다. 반면 민주당 쪽은 연설이 이민 규제와 국경장벽, 러시아 스캔들 수사 반발 등으로 옮겨감에 따라 의석에 앉아 고개를 젓는 등 싸늘한 분위기를 보였다. 애초 지난달 29일로 잡혔던 국정연설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당)의 반대로 연기됐다가 셧다운 종료 합의로 이날로 옮겨졌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마이 웨이’를 거듭 강조하면서 미국 정치의 분열은 출구를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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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단 뒤편에서는 펠로시 의장이 당연직 상원의장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나란히 앉아 연설을 들었다. <워싱턴 포스트>는 “펠로시 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왼쪽 뒤편에서 지그시 내려다보는 모습은 미국의 새로운 정치 현실을 상징하는 이미지”라고 촌평했다. 펠로시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여성의 취업 개선 등을 얘기할 때는 일어나 박수를 쳤으나, 그가 자신에 대한 조사를 비난할 때는 냉담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펠로시 의장과 민주당은 국정연설 초청객의 면면으로 묵언의 메시지를 전했다. 트랜스젠더 미군 장교 2명, 지난해 2월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플로리다주 고교 총기 난사 사건 생존자, 불법체류자 출신의 이민권협회장이 포함됐다. 성소수자 권리, 총기 규제, 낙태권, 국경장벽 반대 등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정책과 정면으로 맞서는 이들을 초청해 민주당의 어젠다를 강조한 셈이다.

주요 미국 언론들은 연설에 박한 점수를 줬다.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상 최장인 35일간의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를 부른 국경장벽 예산 요구를 둘러싸고 깊게 분열한 의회 앞에서 초당적 협력을 요구했다”며 싸늘한 시각을 보였다. <뉴욕 타임스>도 “국정연설로 국경장벽을 둘러싼 당파적 긴장을 높였다”고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폭스 뉴스>는 “단합을 호소하며 어리석은 수사와 복수의 정치를 개탄”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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