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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조금만 더 있다 가지"…벗 떠나보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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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길원옥·이용수 할머니 빈소 방문

길 할머니, 주변 부축 받으며 장례식 조문…말없이 영정사진 응시

이 할머니 "나는 200살까지 살아서 일본 사죄 받겠다"

이데일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가 2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복동 할머니 빈소를 찾아 조문하자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가 길 할머니를 위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황현규 기자] “조금만 더 있다 가지…” “우리 저번 수요일에도 봤잖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의 상징으로 불리는 김복동 할머니가 암 투병 끝에 지난 28일 늦은 오후 세상을 떠났다. 향년 93세다. 김 할머니의 생전 바람처럼 29일부터 시민장으로 치러진 이번 장례식에는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91) 할머니와 이용수(92) 할머니가 방문해 슬픔을 함께했다.

◇길원옥 할머니, 무릎 꿇고 멍하니 사진만 응시

이날 오후 2시경 길 할머니는 휠체어를 타고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날씨가 쌀쌀한 탓에 길 할머니는 목티에 목도리, 두꺼운 외투까지 걸친 모습이었다.

휠체어가 장례식장 난간을 넘지 못하자, 길 할머니는 조문객의 양팔 부축을 받고서야 빈소에 입장했다. 영정 사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길 할머니는 5분이 넘도록 말이 없이 김 할머니의 웃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바라봤다. 길 할머니는 사진 속 김 할머니의 눈을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바닥으로 돌리기도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유가족과 조문객들은 고개를 숙여 눈물을 흘렸고, 간간이 울음소리가 새나왔다.

이어 주변의 부축을 받고 일어난 길 할머니는 빈소 옆에 마련된 휴게실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이어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이 제공한 김 할머니의 ‘조문보’를 들여다보던 길 할머니는 조문보 앞에 적힌 “뚜벅뚜벅 걸으신 평화·인권운동의 길, 저희가 이어가겠습니다”라는 문구를 나지막이 읽어 내려갔다.

정의연 관계자가 “김 할머니 보니까 어때요?”하고 묻자 길 할머니는 말이 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어 길 할머니는 “조금만 더 있다 가지”라며 나즈막한 소리로 읊조렸다. 이를 듣자 정의연 관계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할머니를 껴안았다.

한편 길 할머니는 세상을 떠난 김 할머니와 나눔의 집에서 오랫동안 함께 살며 적극적으로 위안부 피해회복 활동을 해온 인물이다.

길 할머니 또한 김 할머니와 같이 재일조선학교에 관심이 많았다. 작년 태풍 피해를 당한 학교 학생들을 위로하기 위해 지원금을 기부했다. 또한 매주 수요집회에 참석해 위안부 피해 사실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의연에 따르면 길 할머니는 1928년 평안북도 희천에서 태어나 10대 시절 만주 하얼빈과 중국 스자좡에 끌려가 위안부 피해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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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실에 마련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에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조문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영화 ‘아이캔스피크’의 주인공 이용수 할머니…“훨훨 날아가서 우리 좀 도와줘”

위안부 피해자를 주제로 다룬 영화 <아이캔스피크>의 실제 주인공인 이용수 할머니도 이날 오후 빈소를 방문했다. 앞서 길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주변의 부축을 받고 장례식장에 입장한 이 할머니는 영정 사진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이내 이 할머니는 “하늘나라 먼저 간 할머니들과 만나라”며 소리쳤다. 그러면서 이 할머니는 “아픈 데 없이 훨훨 날아가서 우리 좀 도와달라”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김 할머니의 별세가 실감 나지 않는 듯 지난 수요 집회 때의 모습을 회상했다. 이 할머니는 “우리 수요일에 봤잖아. 그때 고개도 끄덕거렸잖아. 근데 왜 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할머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대사관 앞에서 우리가 앉아서 외쳐야 해요? 우리가 무슨 죄가 있어요”라며 통곡했다. 이후 할머니는 성호경을 그은 뒤 분향을 마치고 빈소를 나왔다.

이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회복을 위한 의지도 내비쳤다. 이 할머니는 빈소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서럽게 눈도 못 감고 떠난 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며 “나는 200살까지 살아서 반드시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겠다”고 밝혔다.

이 할머니는 2007년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일본군위안부 청문회장에서 위안부 피해사례를 증언한 인물이다. 이 이야기는 영화 <아이캔스피크>에도 소개가 된 바 있다. 위안부 피해를 고백한 이후에도 이 할머니는 수요 집회에 참석해 “우리가 침묵하면 세상도 침묵하고 변하지 않습니다”라며 위안부 피해회복 운동을 적극적으로 독려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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