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에 위안부피해 공개 증언한 인물
빈소는 서울 연대 세브란스 병원…'김복동 시민장' 치뤄질 예정
2014년 4월 경기 성남 중원구 여수동 성남시청 광장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소녀상을 만져보고 있다. 김 할머니는 29일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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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황현규 기자] 일본군 ‘위안부’의 상징으로 불리는 김복동 할머니가 건강 악화로 별세했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28일 오후 10시 41분경 김 할머니가 암 투병으로 별세했다고 29일 밝혔다. 향년 93세.
김 할머니의 별세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총 23명으로 줄었다.
김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를 공식적으로 세상에 알린 인물로 평가된다. 1992년 최초로 유엔인권위원회에 파견돼 위안부 사실을 증언했고, 1993년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후 2000년에는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에서 원고로 참여해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이후에도 김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회복을 위한 활동을 꾸준히 이어갔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나비기금 설립(2012년) △전쟁·무력분쟁지역 아이들 장학금 5000만원 나비기금에 기부(2015년) △무력분쟁지역 성폭력 피해자 지원 및 활동을 위한 ‘김복동 평화상’ 제정(2017년)이 대표적이다.
김 할머니의 공로는 수상으로도 증명됐다. 김 할머니는 △미국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시의회 용감한 여성상(2010년) △국경 없는 기자회·AFP가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 선정(2015년)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2015년) △서울특별시 명예의 전당(2017) △정의기억재단 여성인권상(2017년)을 수상했다.
정의연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1925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만 14세인 1940년 위안부로 끌려가 중국과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에서 피해를 당했다. 김 할머니는 해방 이후 1947년 귀향했다.
한편 김 할머니는 1년여 동안 암 투병을 해왔으며, 3주 전부터 병원에 재입원해 마지막 치료를 받아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9월에는 투병 중에도 할머니들의 동의 없이 설립한 ‘화해치유재단’의 해산을 촉구하는 집회에 나서기도 했다.
정의기억연대는 “김 할머니는 국제사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며 “전시 성폭력 피해의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으로 국제여론을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빈소는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 1호실에 마련되며, 장례식은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시민장’으로 치러진다. 조문은 29일 오전 11시부터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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