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피해의식으로 평생 괴로워하셔
그래도 활동가들 챙기는 정 많았던 분”
2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새해 첫 일본군 성노예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에서 한 시민이 평화의 소녀상에게 솜꽃을 달아준 뒤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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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명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는 28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이모 할머니의 별세를 알렸다. 향년 94세.
윤 대표에 따르면, 이 할머니는 17세 되던 1942년경 직장인 방직공장에서 퇴근하다가 그 근처 군용 트럭에서 내린 군인에게 동료 2명과 함께 납치됐다. 트럭에는 이미 여러 명의 여성이 있었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이어 또 다른 트럭에서 내린 여성까지 열댓 명 정도와 함께 강제로 배에 태워져 일본 시모노세키로 끌려갔다. 시모노세키에서 또다시 만주로 옮겨져 끔찍한 일본군 성노예 피해를 당했다.
할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일본군인들이 오지 않아 해방이 된 것을 알게 됐지만, 돈도 한 푼 없는데다 조선으로 갈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도 없어 귀국할 방도를 찾다가 동료 2명과 항구로 가서 조선인 선주에게 사정해 간신히 밀수선인 소금배를 얻어 타고 돌아왔다.
윤 대표는 “할머니는 죄책감과 피해의식으로 평생을 괴로워하셨다”며 “오랫동안 고통을 잊지 못하시고 늘 얼굴에 그늘이 져 계셨다”고 전했다. 또 “찾아 뵐 때마다 할머니의 얼굴에 드리운 괴로움과 외로움을 보며 안타깝고 아팠다”며 “그래도 활동가들을 보시면 무척이나 반가워하시고 집에 잘 돌아갔는지 확인 전화도 하실 정도로 정이 많으셨다”고 밝혔다.
할머니의 건강이 악화된 건 지난해 말부터다. 윤 대표는 “큰 고통을 견디시다 28일 오전 하늘로 가셨다”며 “아프고 고통스럽고 외롭고 힘든 기억은 모두 잊으시고 편안하시기를 바란다”고 할머니의 명복을 빌었다.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장례는 비공개로 진행된다.
이 할머니의 별세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24명으로 줄었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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