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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밟힌 피해자 얼굴보고 한달음에…‘암사역 칼부림’ 숨은 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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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 입고도 맨손대치 이명은씨

경찰 올 때까지 끝까지 중재나서

“방관한 시민·경찰관 비난보다

시스템 해결하는데 도움 됐으면”

헤럴드경제

“선생님, 진정하세요. 진정하시고 나오세요.”

지난 13일 오후 7시께 서울 지하철 암사역 3번 출구 앞 인도에서 발생한 일명 ‘암사역 칼부림’ 사건은 우리사회에 두번의 실망감을 안겼다. 칼에 찔린 피해자를 지켜보고만 있던 주변 사람들에 한 번, 테이저건조차 제대로 쏘지 못하는 경찰의 미숙한 대응에 두 번.

하지만 아수라장 같은 현장에서도 자기 자신보다 주변을 먼저 생각하는 숨은 의인이 있었다. 주인공은 직장인 이명은(28·사진) 씨다. 사건 당일 이 씨는 단골 빵집에서 크림빵을 사서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평범한 퇴근길이 될줄 알았던 그날, 이 씨는 멀리서 들리는 웅성거림을 들었다. 소리가 들리는 곳에선 드럭스토어 앞에 쓰러져 맞고 있는 누군가의 실루엣을 봤다. 암사역 칼부림 사건의 피해자인 박모(19)군을 한모(19)군이 폭행 하는 상황이었다.

“진정하세요. 흥분하신 것 같으니 진정부터하세요“. 이씨는 한달음에 달려가 칼을 든 한군을 제압하러 나섰다. 그를 움직인 건 옳은 일을 해야 한다는 당위가 아닌 사람에 대한 동정심이었다.

헤럴드경제

지난 13일 오후 서울 지하철 암사역 3번 출구 앞 인도에서 박모 군이 쓰러진 채 한모 군에게 폭행 당하는 가운데 이명은(사진 뒷모습)씨가 이를 말리려 달려가고 있다. [사진=목격자 동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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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길바닥에 쓰려져 얼굴을 밟힌 피해자를 보고 ‘다른 곳도 아닌 사람 얼굴을 저렇게 밟으면 어쩌나’하는 마음에 몸부터 움직였다”고 말했다.

“평소에도 싸움이 나면 항상 가서 말리는 ‘오지랖’”이라는 이 씨지만 칼까지 들고 싸우는 현장이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한군 손에서 칼을 빼앗아보려고 시도하다 손끝에 부상도 입었다. 그래도 경찰이 올때까지 버텼다. 쉽사리 흉기를 빼앗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자 “경찰 올 때까지만 진정이라도 시켜보자”는 생각으로 시간을 끌었다.

혼자 나선 이씨에겐 10분도 1시간 같았다. 당시 현장에는 이 씨를 제외한 수많은 시민들이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선 것은 이 씨 혼자였다. 박 씨가 맞고 있던 가게 안에는 유리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손님들이 가득했지만, 현장을 촬영한 영상엔 밖에서 유리문을 열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버티고 선 손님들의 모습만이 찍혔다.

해당 영상이 공개된 후 방관하는 시민들을 향한 비난도 폭주하는 상황에서 정작 이 씨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했다. “칼 든 사람을 보면 누구나 두려움을 느낀다”며 “그분들을 비난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 씨는 당시 현장에서 도와주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르던 시민들도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그는 “‘학생 하지마 하지마’ 하며 말리려던 아주머니 한분이 계셨는데 위험하실 것 같아 일찌감치 뒤쪽으로 안내했다. 칼을 보고 발길을 돌리긴 했지만, 싸움을 말리려고 다가왔던 아저씨도 한분 계셨다”고 말했다.

그가 유일하게 아쉬움을 드러낸 대목은 경찰의 미숙한 대응을 낳게 한 시스템이다. 이 씨는 “경찰만 오면 다 해결될거라 믿고 기다렸는데, 뒷걸음질 치는 모습에 실망도 했다”며 “다음에 이런 일이 있으면 오히려 못 나서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고 했다. 이어 “현장에 출동한 경찰 개인보다는 테이저건의 한계를 시스템적으로 보완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김유진 기자/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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