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인들이 겪은 고통은 그동안 조명되지 않았던 현대사의 또 다른 비극이다. 이들은 4·3 당시 죄도 없는데 군경에 의해 끌려간 뒤 내란죄 또는 국방경비법 위반 등으로 징역 1~20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풀려난 이후에도 연좌제 때문에 가족들까지 숱한 불이익과 핍박을 받았다. 이들처럼 군사재판에 의해 4·3 수형인은 무려 2530명, 그중 상당수는 행방불명되거나 옥고로 이미 숨졌다.
2017년 생존 수형자 18명이 재심을 청구했을 때 과연 이들이 억울함을 풀 수 있겠느냐는 회의도 있었다. 재판 과정과 수형을 입증할 공소장이나 공판기록 등은 없고 단지 그를 유추할 수형인명부 등 문서만 있었기 때문이다.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니 재판의 불법성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 점에서 법원이 “재심 요건에 미비하다고 청구인들이 신원을 회복할 기회를 차단하는 것은 법관의 임무를 외면하는 결과가 된다”며 재심을 개시한 데 이어 이날 공소를 기각한 것은 지극히 온당하다. 공소사실도 특정되지 않고 법적 절차를 갖추지 않고 진행한 재판은 무효일 수밖에 없으며, 불법 체포·구금에 이어 고문 등으로 범죄를 조작한 것도 엄연히 인정되는 사실이다.
4·3은 지난해로 70주년을 넘겼지만 여전히 미해결 상태에 있다. 진상규명은 물론 피해자들의 명예회복도 다 이뤄지지 못했다. 당장 재심을 청구하지 못한 생존자 10명의 억울함부터 풀어야 한다. 국회에 계류 중인 4·3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도 처리해야 한다. 개정안은 ‘명예회복 및 보상’ 조항을 새로 두어 국가로 하여금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회복 및 보상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지체 없이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판결이 4·3의 온전한 해결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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