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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맞아 죽지 않게 도와주세요.”
지난해 5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의 제목이다. 현직 소방관이라 소개한 청원자는 “하루 10회 내외의 구급 출동 중 절반가량은 주취자로 인한 출동”이라며 “출동 시마다 반복적인 폭언과 폭행을 당한다”고 호소했다. 같은 달 전북 익산에선 소방대원이 주취자에게 폭력을 당해 뇌출혈로 사망했다. 지난해 1월 10명의 사상자를 낸 종로 여관방화 사건과 ‘윤창호법’의 계기가 된 9월 음주운전 교통사고의 가해자도 모두 주취자였다.
주취폭력(주폭)의 심각성이 커지면서 음주 규제에 대한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1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음주 관련 글은 최근 1년 동안 4415건에 이른다. 청원 대부분은 “음주 범죄를 가중 처벌해달라”, “주취폭력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며 음주 범죄 처벌과 규제를 강화하라는 내용이다.
실제로 범죄자 중 주취자 비율은 과거보다 높아졌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6년 범죄자 중 주취자 비율은 25.14%로, 10년 전(16.03%)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특히, 강력범죄의 주취자 비율은 30.35%로, 거의 삼 분의 일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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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좋아하면 호인?”…음주문화 형성될 수밖에 없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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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이미 흡연도 넘어섰다. 2015년 9월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주요 건강위험요인의 사회경제적 영향과 규제정책의 효과 평가’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음주의 사회경제적 비용은 9조4524억원, 흡연은 7조1258억원으로 음주가 흡연보다 2조3266억원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들은 사회적 인식과 규제 모두 음주에 유독 후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정호(34)씨는 “주취자 범죄의 처벌이 약하다고 본다”며 “음주에 후한 법체계가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시 은평구에 거주하는 흡연자 윤모씨(25)는 “음주나 흡연으로 발생하는 사고 둘 다 무서운 일인데 사람들은 음주에 관대하다”며 “술 좋아하면 호인이고 담배 피우면 미개인이냐”고 불만을 터트렸다.
이해국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국제보건기구(WHO)에서 제시하는 가장 효과적인 음주 규제 정책 3가지(접근성 제한, 광고 규제, 단기개입) 중 어느 것도 시행하고 있지 않다”며 “음주에 있어 처벌과 사회적 비난에서 자유롭다 보니 관대한 문화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특히 주류 광고 규제가 약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해외에선 적어도 아이돌이나 스포츠 스타가 주류 광고를 하진 않는다”며 “하지만 국내에선 규제가 공중파 중심으로 되어있고, 인터넷TV(IPTV)나 온라인 광고엔 거의 없다”고 전했다. 국내 대표 소주 브랜드인 참이슬과 처음처럼의 광고모델은 최정상급 여자 아이돌인 아이린과 수지다. 참이슬은 지난 4년 동안 ‘국민 여동생’으로 불린 아이유를 모델로 기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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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장소에서 술병 열면 징역”…강력한 해외 규제━
실제로 해외에선 우리나라보다 좀 더 강력한 음주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 뉴욕주에서는 주류개봉금지법(Open Container Law·오픈컨테이너법)이 있어 개봉한 술병을 공공장소에서 남의 눈에 띄게 들고 다니면 불법이다. 위반 시 벌금 1000달러(약 110만원) 또는 6개월 이하의 징역형에 처한다.
캐나다의 대부분 주에선 주류 판매가 허용된 음식점, 라운지 외의 공공장소에서는 주류 사용과 소비가 엄격히 금지된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에서는 술에 취한 사람이 공공장소에 나타나면 경찰이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는 정도다.
영국은 18세 이상의 성인이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실 수 있지만 취할 경우 경찰이 술을 압수할 수 있고, 타인을 불쾌하게 하는 행동을 할 경우 최대 500파운드(약 70만원) 벌금을 매기거나 체포한다. 성인이더라도 음주금지지역에선 주류 사용이 금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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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지난해 11월 ‘음주 폐해 예방 실행계획’ 발표…실현 가능성은?━
/참이슬 전 홍보모델 아이유. 사진=머니투데이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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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시 개선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1월 ‘음주 폐해 예방 실행계획’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공공장소 금주구역 지정, 주류 광고 기준 강화 등이다. 특히, ‘술 마시는 행위’ 표현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입법 과정을 거쳐 공포가 될 때야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2012년 공공장소 음주 제한 등을 골자로 한 입법예고안을 발표했지만, 대학 내 금주구역 지정이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적이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올해 중 입법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이 교수는 “흡연율은 저절로 낮아진 게 아니라 담배회사와의 50년 투쟁의 산물”이라며 “음주 규제 역시 주류 업계의 로비를 받는 정치권의 영향이 있는 한 통과되기 쉽지 않다”고 전했다.
강민수 기자 fullwater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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