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해빙 무드속 '반쪽 역사' 짝 맞추기 작업착수 기대 고조
"남북간 차이 인정하고 실증 중심 공동연구부터 착수해야"
김일성 주석은 1992년 펴낸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유관순 열사를 "이름난 순국 처녀"로 기록하며 이렇게 언급했다.
김일성 회고록이 북한 주민들의 '필독서'임을 고려하면, 북한에서도 유관순 열사를 비교적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1990년대 이전까지는 북한 역사서에서 유관순 열사에 대한 기술이 전무하다가, 김일성 회고록 발간을 기점으로 뒤늦게 재평가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남측에서 널리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다. 오히려 '북한에서는 유관순을 모른다', '유관순에 대한 평가는 남한만의 현상' 등의 근거 없는 주장이 여전히 일각에서 제기되는 실정이다.
해방과 동시에 남북이 쪼개지면서 3·1운동에 대한 역사기술도 급격히 '분단'돼 생긴 현상이다.
학계에 따르면 북한도 3·1운동을 기념비적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다.
북한의 정치사전은 '3·1봉기'(3·1운동의 북한식 표현)를 '1919년 일제의 야만적인 식민지 통치를 반대하며 민족적 독립과 자유를 위하여 싸운 조선 인민의 전민족적 반일애국투쟁'으로 정의하고 있다.
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가 1980년 발행한 '조선전사'도 "1919년 3월 1일은 우리 민족이 일제 침략자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준 날로, 우리 민족이 자기의 자유를 위하여 고귀한 피를 흘린 역사적인 날로 우리 조국 역사 위에 아로새겨지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3·1운동이 '실패'했다고 규정한다. 3·1운동의 결과로 임시정부 수립을 꼽지 않는 점도 남한과 평가가 극명히 엇갈리는 부분이다.
'조선전사'에 따르면 북한은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을 '혁명적 당의 영도' 부재로 봤다.
또 '부르주아 민족주의'가 민족해방운동의 사상적 기치가 될 수 없다는 점, 사대주의 배격 및 무장투쟁의 필요성을 설파한다.
아울러 북한은 3·1운동의 발발지를 평양으로 부각하는 등 시대에 따라 역사기술을 조금씩 달리했고, 핵심 인물로 김일성의 부친 김형직을 내세워 김일성 가계의 우상화에 활용했다.
반면 남측에서는 3·1운동이 서울 탑골공원에서의 독립선언식과 만세시위 중심으로만 부각됐고, 사료 부재 등의 이유로 북측 지역의 활약상은 조명받지 못했다.
2019년 1월의 독립운동가 '유관순' |
전문가들은 한반도 정세의 변화로 남북관계가 해빙을 맞은 지금이 '반쪽짜리' 역사를 서로 짝맞춰 나가는 작업을 시작할 적기(適期)라고 입을 모은다.
남북 정상도 지난해 채택한 '9월 평양공동선언문'에서 3·1운동 100주년을 공동으로 기념하기로 하고, 그를 위한 실무적인 방안을 협의해나가기로 합의했다.
올해 공동행사가 치러진다면, 이를 시작으로 남북 간 공동연구 등을 위한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김일성 가계와 관련된 모든 역사적 사료 등을 노동당 중앙위원회 산하 당역사연구소에서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남북 당국 차원에서 공동연구 등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다면 비(非)정치분야 교류이므로 북한의 종합연구기관 격인 사회과학원이 전면에 나설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민간 차원에서 3·1운동을 함께 기념하려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지난해 11월 말 방북해 북측 민화협과 관련 문제를 논의했으며, 북측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박남수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상임대표는 "3·1운동 첫날 시위가 있었던 북측 지역 공동답사를 비롯해 기념 조형물 건립 및 공동대회 개최 등을 북측에 제안했다"며 "100년 전 모두가 이념을 버리고 한자리에 모였던 것처럼, 남북, 해외 동포들이 모두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2019년 남북정상회담 (PG) |
관건은 남북관계 진전에 달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실제 남북역사학자협의회에 따르면 남북 교류가 활발하던 지난 2007년 남측 대학교수들과 북측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소속 연구자들이 주축이 돼 3·1운동 이전까지의 주요 역사용어에 대한 공동연구를 진행했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남북관계가 악화하면서 이 프로젝트는 중단됐다.
북한이 3·1운동을 비롯한 모든 항일운동사를 김일성 일가의 1인 지배 체제와 연관 지어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는 이를 깊이 파고드는 데 대한 부담감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3·1운동이) 결국 김일성 일가의 '뿌리'와 관련된 문제이므로 공동연구 확대 제안 등에는 반대할 가능성이 있다"며 "'민감한 문제'에 대한 평가를 하려면 남북관계가 좀 더 진전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남북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부분부터 차근차근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공동연구를 비롯해 북측 3·1운동 성지 답사, 사진전 개최 등이 점진적 접근 방법론으로 거론된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위원장을 지낸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남과 북이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접근하는 데 있어 역사와 언어 연구는 필수적"이라며 "가장 중요한 건 실증 중심, 사실과 자료 중심으로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남북 간 사관에 따라 중요시하는 부분이 다를 수 있지만, 양쪽이 모두 높이 평가하는 독립운동가 등 공통된 주제부터 연구를 시작하면 된다"고 제안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남측에서도 현대사를 평가하는 시각이 보수, 진보에 따라 다른데, 체제가 다른 상황에서 그 간극을 한 번에 똑같이 맞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단계적으로 공동연구나 기념행사를 먼저 치르고, 일제강점기를 넘어 그 이전의 역사 재정리로 조금씩 확대해나가면 된다"며 "남북 간 민족의 동질성과 뿌리를 찾는 부분은 대북제재에 해당하는 사안도 아니므로 100주년을 계기로 항일운동 전반에 대한 역사적 재정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shi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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