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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는 어떻게 '교육도시'가 됐나…연유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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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인쇄문화 주도한 데다 교육 종사자·시설도 많아

(청주=연합뉴스) 박재천 기자 = 청주시기록관이 최근 낸 보도자료에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건물 1층의 기록홍보관을 개관하는데 이곳에 "청주가 교육의 도시라 불리게 된 근거인 '청주판 명심보감' 등 청주와 관련된 역사적 기록물에 대한 이야기도 전시된다"는 내용이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청주는 '교육의 도시'로 불려왔다. 그러나 그 근거가 명확한 것은 아니었다.

청주시고인쇄박물관은 청주가 우리 인쇄문화를 주도한 것에서 답을 찾고 있다.

박물관에 따르면 중국 명나라의 범립본(范立本)은 중국 고전에서 선현들의 금언과 명구를 뽑아 1393년 명심보감을 편저했다.

명심보감 원전이 나온 지 61년 후인 1454년 충청도 관찰사 민건, 청주목사 황보공, 청주목 판관 구인문, 청주 유학 교수관 유득화 등이 목판으로 '청주판 명심보감'(신간대자명심보감·新刊大子明心寶鑑)을 간행했다.

연합뉴스

청주판 명심보감 [청주고인쇄박물관 제공]



계유정난(1453·단종 원년) 관련해 인륜을 바로잡기 위해 일종의 윤리 교과서인 명심보감을 인쇄해 배포한 것으로 보인다.

청주는 유독 인쇄술이 발달했다.

1305년 원흥사에서 금강반야바라밀경이 목판으로 간행됐고, 1377년에는 현존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된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직지)이 흥덕사에서 간행됐다.

금속활자본 직지는 아직 국내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있고, 하권 1권만이 유일하게 프랑스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황정하 고인쇄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이런 서적의 간행은 청주가 교육문화 도시로서 지식정보의 확산을 선도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지역 학계는 도심 한복판에 있는 국보 제41호 용두사지 철당간의 명문도 청주가 예로부터 교육을 중시했다는 증거로 제시한다.

고려 광종 13년(962)에 세워진 철당간 명문에 '학원경(學院卿)'과 '학원낭중(學院郞中)'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는 교육 관련 관직명으로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는 근현대 청주의 인구 수준을 볼 때 학생 등 교육계 종사자와 교육시설이 상대적으로 많아 지리학적으로 교육도시로 분류됐다는 주장도 편다.

실제 1980년 초중반 청주의 인구는 20만명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당시 대학만 해도 충북대, 청주대, 청주사대(현 서원대), 청주교대, 한국교원대, 간호전문대(현 교통대 증평캠퍼스), 충청대 등 7곳으로 비슷한 규모의 도시보다 많았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청주는 세인들의 뇌리에서 오랫동안 교육도시로 남았다.

청주가 교육도시의 명성을 잇기 위해서는 교육 당국과 지자체가 협력, 경쟁력 있는 교육정책을 과감하게 선보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계의 한 인사는 "몇 개 학교 주변을 교육 특구로 지정, 교육 유해시설 진입을 막는 등 교육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나가는 것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jc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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