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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현란한 색파동으로 담은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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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나선 N.19`(57.8x5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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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폭에서 현란한 색깔 파동이 일어나 오묘한 공간이 됐다. 치밀한 스케치와 정교한 붓질, 오랜 내공이 빚어낸 절정의 미술이다.

기하추상 거장 한묵(1914~2016)은 그림 속에 우주 에너지를 담고 싶었다. 1969년 미국 아폴로11호의 달 착륙에 충격을 받아 3년간 끙끙 앓았던 그는 2차원인 캔버스에 3차원, 4차원의 시공간을 담기 위해 번민했다. 생전에 그는 "어디가 끝인지 알 수도 없는 무한한 우주 속에 살면서, 그 우주 공간을 느끼려 하지 않는 건 문제"라고 되뇌었다. 그래서 직접 만든 컴퍼스를 사용해 원과 나선형, 방사형 등을 기하학적으로 표출했다. 다른 화가들이 흉내내기 어려웠던 색채 미학은 7년간 금강산에서 사계절을 보면서 얻었다. 1945년 38선으로 국토가 분단되자 북한에 머무른 그는 일본 가와바타 미술학교 유학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화가 이중섭과 교류하며 작업했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종군화가가 됐던 한묵은 1955년 서울 정릉에서 이중섭과 하숙 생활을 시작하면서 홍익대 교수로 재직했다. 그러나 1961년 홍익대에 사표를 내고 홀연히 파리로 떠났다. 교수직에 안주하면 제대로된 작품 활동을 못할 것 같아 내린 결단이었다. 거의 맨주먹으로 떠나와 거리 청소부와 식당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궁핍에도 자식 같은 작품을 쉽게 팔지 못해 파리 집세만 간신히 냈다. 그는 입버릇처럼 "붓대 들고, 씩 웃으며 가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201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작업에만 매진했다. 평생 시공간과 생명의 근원을 성찰하는 독창적인 조형언어를 창조했던 그의 개인전 '또 하나의 시(詩)질서를 위하여'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국내 최초 공개 작품 60여 점을 포함해 총 130여 점이 펼쳐졌다.

전시는 내년 3월 24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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