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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독일, 부모와 생이별 유대인들에게 80년 만에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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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박해에 어린이 1만명 영국 대피

대부분 부모 등 가족과 영원히 이별



한겨레

80년 전 아이만은 살리겠다는 절박함에 가족과 생이별하고 영국으로 보내진 유대인들이 독일 정부에 배상을 받게 됐다.

<가디언>은 ‘어린이 이송’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대피 행렬의 생존자 1천여명에게 독일 정부가 1인당 2500유로(약 320만원)를 배상하기로 했다고 17일 보도했다. 독일 정부는 1950년대에 같은 이유로 돈을 받은 일부도 이번 배상에서 제외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조처는 ‘어린이 이송’ 선발대 196명이 영국 하리치 항구에 도착(1938년 12월2일)한 지 80년이 되는 것에 맞춰 이뤄졌다.

유대인 박해의 한 장을 차지하는 ‘어린이 이송’은 1938년 11월9~10일 ‘깨진 유리의 밤’ 사건이 직접 계기가 됐다. 이 사건은 나치와 그 추종자들이 독일 전역에서 유대인 상점과 유대교 회당을 파괴한 폭동으로, 유대인 박해의 본격적 시발점이 됐다. 유대인들은 큰 시련이 다가옴을 직감했다. 영국은 아이들만이라도 살려달라는 호소에 반응해 독일과 그 영향 아래에 있는 지역의 17살 미만 유대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자유도시 단치히의 기차역에서 어린이 1만명이 부모와 작별했다. 독일이 자국 항구는 이용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네덜란드와 벨기에까지 기차로 이동한 다음에 배를 타고 영국에 도착했다. 말도, 문화도 낯선 나라에서 살아야 하는 운명이 그들을 기다렸다. 상당수가 혼자였던 아이들은 반은 영국 가정이 맡았고, 나머지는 학교와 농장 등에 수용됐다. 피해자들 중에는 모험 여행을 떠나는 줄 알았다고 말한 이도 있었다. 당시 장면을 담은 사진들을 보면, 아이들은 신나는 여행을 하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부모들은 상황이 호전되면 아이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지만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어린이 대부분은 부모를 비롯한 가족과 다시 만나지 못했다.

독일에서 ‘어린이 이송’은 폴란드 침공일인 1939년 9월1일이 마지막이었다. 네덜란드가 항복하기 하루 전날인 1940년 5월14일 마지막 이송 행렬 74명이 네덜란드 항구를 떠났다. 아이들이 부모와 작별 인사를 나눈 유럽의 여러 기차역에는 이를 표현한 동상들이 지금도 놓여 있다.

에릭 라이시 영국 유대인난민협회 회장은 “우리의 정신적, 물질적 상실은 돈으로 보상할 수 없지만, 독일 정부의 조처는 부모와 헤어져 말과 문화가 다른 낯선 나라에서 살아야 했던 우리의 과거를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은 지금까지 83개국에 사는 나치 피해자 6만여명에게 750억유로(약 92조원)를 배상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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