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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일)

脫원전은 지우고 제조업 일자리에 '올인'…산업부도 정책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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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통상자원부는 1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2019년 산업부 업무보고’는 전날 ‘2019년 경제정책 방향’ 발표와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의 정책 전환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장(場)이었다. 탈원전은 거의 언급되지 않고, 대신 제조업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이 반복해서 강조됐다. 에너지 정책 중심이었던 산업부의 정책 과제를 제조업 혁신 중심으로 선회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청와대와 정부의 정책 전환 신호는 업무 보고 형식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산업부는 이날 업무보고를 ‘제조업 활력 회복과 혁신’을 주제로 한 토론회 방식으로 했는데, 중견·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기업인까지 토론자로 불렀다. 토론회 참석자는 문 대통령, 성윤모 산업부 장관을 비롯해 청와대, 더불어민주당 인사까지 포함됐다.

정첵 과제에서도 탈(脫)원전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산업부에서 탈원전을 의미하는 ‘에너지 전환’은 5대 중점 추진 사안 가운데 4번째로 밀린 데다, 원전과 관련해서는 "단계적 감축 과정에서 안정적 원전 운영과 원전 생태계 유지를 위해 정책적 지원을 확대한다"는 내용이 잠깐 언급되었을 뿐이다.

◇지역 제조업 붕괴에 부랴부랴 대책 쏟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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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부평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에서 직원이 텅 빈 생산 시설을 지켜보고 있다.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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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는 업무보고에서 제조업 가운데에서도 부산·경남과 전북 등 지방 제조업 위축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적시했다. 산업부는 "제조업이 밀집된 지역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경기 침체, 활력저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전북 군산, 전남 대불, 경북 구미 등 주요 산단 고용인원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그 영향이 지역 경제로 파급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산단별 고용인원을 보면 2016년 8만6000명이었던 군산은 올 7월 5만2000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대불은 5만1000명에서 4만6000명으로, 구미는 92만명에서 90만1000명으로 각각 쪼그라들었다. 산업부는 "생산과 고용 활력이 크게 위축된 지역의 산업 생태계 복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지역 제조업을 살리기 위한 대책은 크게 세 가지가 언급됐다. 먼저 ‘광주형 일자리’를 본 뜬 상생형 지역일자리 모델을 만들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지역의 기업 투자를 유치하겠다는 얘기다. 두 번째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지역별로 신산업 관련 투자를 유치한다는 것이다. 산업부는 개별 프로젝트별로 투자를 유치하는 방식으로 사업 실현 가능성을 높였다. 세 번째는 자동차 부품 산업 대책이다. 현대기아차 해외 매출 부진, 한국GM 공장 폐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품사에 대한 자금 지원과 새 먹거리 창출로 부품 업체들이 무너지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지역 활력 프로젝트’라는 이름이 붙은 지역별 신산업 유치 프로젝트는 전북과 부산·경남에 초점이 맞춰진 정책이다. 자동차, 조선, 기계 등 이 지역 대표 제조업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신규 투자를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전북 군산의 중고차 수출 복합단지와 조선 기자재 업체의 재생에너지 발전 기자재 업종으로 전환, 부산의 르노 초소형 전기차 위탁 생산 공장 및 전력 제어용 반도체 단지 육성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광주, 경북 구미 등 제조업 공장이 빠져나가면서 지역 경제가 둔화된 지역이 프로젝트 대상이었다.

자동차 산업 활성화 대책도 이날 발표됐다. 2013년 건설업체 지원 방안과 유사하게 부품업체들이 1조원 규모로 선순위 부채담보부채권(Primary CBO·P-CBO)을 발행해 자금을 직접 조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골자다. 만기 연장, 보증 등 금융 지원 규모는 총 3조5000억원. 2022년까지 수소차 보급 목표를 종전 1만5000대에서 6만5000대로 늘리는 등 공격적인 친환경차 보급 확대 정책도 거론됐다. 무엇보다 업무보고에 자동차 기업 관계자를 대거 초청하면서 자동차 산업과 관련 일자리를 지키겠단 신호를 보냈다. 이날 업무보고에는 현대차, 쌍용차 임원과 6~7명의 중견·중소 부품업체 기업인이 참석했다. 다른 산업 분야 기업인은 3~4명이었다. 그리고 군산, 울산, 구미의 상공회의소 부회장이 각각 참석했다.

◇원전 언급, ‘2019년 역점 정책’ 1.8% 분량 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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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 두산중공업 공장에서 건설이 취소된 신한울 원전 3호기용 부품이 야적장에 쌓여있다.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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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脫)원전 정책은 사실상 언급되지 않다시피 했다. 총 5개 항목으로 구성된 ‘2019년 역점 추진과제’에서 에너지 정책은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의 전환’이란 항목으로 4번째에 배치됐다. 그리고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정책이 주로 언급됐다. 원전 관련 정책은 4분의 1쪽 분량에 ‘안정적 에너지 공급 체계 유지’라는 항목 안에 들어가 있었을 뿐이다. 총 14쪽 분량인 역점 추진과제 설명 중 1.8%에 불과하다. 앞 세 항목은 각각 지역 제조업 활력회복, 제조업 혁신 가속화, 자동차 부품산업 활력 제고 등 제조업 살리기였다.

게다가 원전 정책도 "단계적 감축과정에서 안정적 원전 운영이 가능하도록 원전 산업 생태계 유지를 위한 정책적 지원 확대"였다. 2017~2018년 탈원전 드라이브를 걸면서 흔들린 원전 산업을 안정화하겠다는 이야기다. 정책 내용도 중소 협력업체 지원, 해외 수주 노력 강화, 원자력 분야 미래비전 제시였다. 신산업 육성 분야에 원전이 거론되었는데, 원전 해체 시장 진출을 위해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업무 보고가 산업 및 에너지 정책에서 청와대의 정책 전환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치적 부담이 클 뿐 아니라 원전 산업 와해라는 부작용이 나타나는 탈원전 정책을 정책 어젠더에서 사실상 뺀 것 아니냐는 것이다.

대신 지역 경제 살리기의 일환으로 제조업 분야 기업 투자를 유치하는 게 핵심적인 산업 정책이 됐다. 기업 유치를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다양한 지원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광주형 일자리 같이 노동계가 상대적 저임금을 수용하는 등의 양보를 이끌어 내겠다는 방침도 내세웠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들은 ‘최소한 산업부 정책 내에서 에너지 전환은 뒤로 밀리고, 산업부가 제조업 활성화에 올인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답하고 있다.

세종=조귀동 기자(ca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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