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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화)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기술 발전에 두 번 우는 장애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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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 시대의 역설-上]
시각 장애인에겐 '무용지물' 키오스크
장애인들에게 기술 발전은 '두려움'
전문가들 "장애인 정보접근성 확보, 작은 배려로 가능"

아시아경제

시각장애인 조민호(52ㆍ가명)씨는 키오스크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그는 끝내 주문을 못해 점원을 불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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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송승윤 기자]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절망에 빠집니다."

17일 오후 서울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조민호(52ㆍ가명)씨. 그는 키오스크(KIOSKㆍ공공장소에 설치된 무인결제시스템)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터치스크린 이곳저곳을 만져봤지만 어디를 눌러야 할 지 도저히 감이 안 왔다. 안내 음성도 나오지 않는 키오스크는 그에겐 두꺼운 유리창 정도에 불과했다. 조씨는 끝내 "혹시 여기 직원이 없느냐"고 외쳐야 했다. 조씨는 시각장애인이다.

조씨가 이처럼 곤욕스런 상황에 처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요즘 부쩍 키오스크 같은 터치스크린형 정보검색 장치가 늘면서 조씨는 매장을 방문할 때마다 지레 겁부터 먹게 됐다.

가장 익숙한 집에서조차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얼마 전 새로 산 전자레인지는 터치형인 탓에 점자 스티커를 따로 붙이지 않으면 아예 사용을 할 수 없다. 비슷한 가전제품이 집안에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점자 표시가 돼있거나 따로 음성 안내가 나오는 일은 드물다.

기술의 발전은 현대인에게 편리하고 윤택한 삶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런 혜택은 장애인들에겐 오히려 '공포'에 가깝다. 기술이 가져다준 새로운 시스템에 그들을 위한 배려는 없기 때문이다. 키오스크 범용화는 그 대표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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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제정된 '공공 단말기 접근성 보장 가이드라인(KS X 9211)'에는 키오스크 같은 공공단말기를 설계ㆍ제작할 경우 '디스플레이에 표시되는 시각적 콘텐츠는 동등한 청각정보와 함께 제공되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이 가이드라인을 지켜야 하는 법적 구속력은 없다.

정부 차원에서 키오스크 사용 현황이나 장애인 접근성에 대한 실태 조사를 벌인 적도 전무하다. 2015년 국가기술표준원이 진행한 연구용역에서 전국에 설치된 키오스크가 3400여 대 정도로 추산된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게 전부다. 이에 대한 장애인 접근성이 어떤지는 파악조차 되지 않는 실정이다.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을 보장하려는 움직임이 아예 없진 않다. 올해 2월 바른미래당 김수민 의원은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키오스크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 통과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전문가들은 장애인의 정보 접근성 확보가 특별한 기술이나 절차를 요하는 일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김훈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정책연구원은 "키오스크를 비롯해 일반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IT 기술이 발전할수록 장애인들은 소외되곤 한다"면서 "기기 교체 시기 등에 이미 제정된 표준을 반영만 하더라도 접근성이 충분히 확보될 수 있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송승윤 기자 kaav@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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