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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 (토)

고위험 ELS·ELT에, 어르신들 노후자금 20조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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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연계증권(ELS)과 주가연계신탁(ELT) 등 고수익·고위험의 파생금융상품에 국내 60대 이상 고령 투자자들이 약 20조원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개인 투자자 투자액의 42%를 차지한다. 수수료 수익을 노리는 금융회사들이 '고수익 상품'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고령 투자자들이 노후 자금을 위험한 투자처에 넣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은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무분별한 고위험 상품 판매가 이뤄지지 않는지 감시·감독을 강화하기로 했다.

◇60대 이상 고령자들이 고위험 상품에 몰려

ELS는 주요국 주가 지수 등 기초 자산이 특정 기간에 정해진 조건 내에서 움직일 경우 이자를 주는 상품이다. 예를 들어 '3개월 뒤 미국 S&P 지수와 코스피 지수가 현재보다 높으면 연 8% 이자를 준다'는 식이다. 기초 자산의 종류와 수, 조건과 만기는 상품마다 다르다. 또 ELT는 증권사가 발행한 ELS를 은행이 신탁자산에 편입해서 판매하는 상품이다. 은행에서 판매하는 ELS 상품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고수익을 내건 대신, 기초 자산으로 삼은 주가 지수나 종목이 폭락하면 크게 원금을 까먹거나 장기간 투자금이 묶일 수 있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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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렇게 복잡하게 설계돼 있고, 투자 위험이 높은 상품에 60대 이상이 대거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금감원이 올해 6월 말 기준 ELS와 ELT 등 파생결합증권 상품을 전수조사한 결과, 개인 투자자 약 75만명이 ELS·ELT 등에 넣어둔 돈이 총 47조2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60대 이상이 투자한 돈이 19조7000억원에 달했다. 60대 이상 투자자 숫자도 전체의 30%인 22만7000명이었다. 80대 이상 투자자도 1만명이나 된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1인당 투자 금액이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40~50대는 1인당 평균 투자액이 5000만~6000만원 안팎인 데 비해, 60대는 7530만원, 70대는 1억230만원이었고, 80대는 무려 1인당 투자액이 1억7230만원에 달한다.

◇은행 창구 판매에 대거 몰려

이 같은 고위험 상품 판매에 가장 적극적인 금융회사가 은행이다. 60대 이상 투자자의 투자액 19조7000억원 가운데 15조원(76%)이 은행 창구에서 판매한 ELT에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현재 ELS·ELT에 투자한 60대 이상 소비자 가운데 약 20%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 상품에 투자한 사람들이다. 고위험 상품 투자 경험이 거의 없는 고령자들이 대거 유입됐다는 뜻이다.

금융권에서는 은행이 저금리로 은행 예·적금 이자가 2% 안팎에 그치자, 노후 자금을 굴릴 투자처를 찾는 고령 투자자에게 7~8% 안팎의 수익률을 제시해 손쉽게 수수료 이익을 내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실제 최근 주요 금융지주는 ELT 상품 판매에서 쏠쏠한 수수료 수입을 올리고 있다. KB금융지주의 신탁 수수료 수입은 올 상반기 2972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약 30%나 늘었다. 신한금융지주의 신탁 수수료 수입도 1286억원으로 이 기간 증가율이 54%나 됐다. 성장세의 상당 부분이 지주 내 은행의 ELT 판매 수수료 증가에 힘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은행들이 상품의 복잡한 구조를 고령 투자자들에게 정확하게 설명했을까. 금감원이 지난 7~10월 전국 14개 은행의 240개 점포에서 투자자로 가장해 고위험 상품에 대해 충실히 설명하는지 여부 등 판매 실태를 점검한 결과, 시중은행의 평균 점수는 100점 만점에 64점에 그쳤다. 신한·하나은행은 60점 미만에 해당하는 '저조' 등급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최근처럼 국내외 증시가 불안정할 때 ELS나 ELT가 기초 자산으로 삼은 주가지수나 종목의 지수가 폭락할 경우 큰 손실이 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경고한다. 실제 지난 2015년 5월 1만5000 선에 육박하던 홍콩 H지수가 약 6개월 만에 반 토막이 나면서 국내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뻔했다.

이상헌 금감원 자본시장감독국 팀장은 "60대까지는 소득이 있는 소비자들이 많지만 70~80대는 대부분 노후자금일 텐데 40~50대에 비해 1인당 고위험 상품 투자액이 많다"며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사전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LS(Equity Linked Securities·주가연계증권)·ELT(Equity Linked Trust·주가연계신탁)

ELS는 개별 종목이나 주가 지수를 기초 자산으로 만드는 파생 금융 상품. 기초자산 주가가 일정 범위 내에서 움직이면 수익이 나지만, 정해진 조건에서 벗어나면 손실을 본다. 만기는 통상 3년이고, 가입 후 3~6개월마다 주가가 정해진 수준 이상이면 미리 약정한 수익을 얻게 된다. ELT는 증권사가 발행한 ELS를 은행이 신탁자산에 편입해서 판매하는 상품이다. 은행에서 판매하는 ELS 상품인 셈이다.

정한국 기자(korej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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