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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변시 1회는 사법연수원 42기?… 뒷말 무성한 ‘기수 교통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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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법 17일 ‘사무분담’ 표결 / 1회·41기 동일 경력 임용과 모순 / 변시 출신 판사들 “소수자 차별”

세계일보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 들어 단독판사 보임 등 사무 분담 기준을 법원별로 자율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사법연수원 출신과 변호사시험(변시) 출신 판사들 간 기수 교통정리를 둘러싸고 사법부가 또 다른 내홍에 휩싸이고 있다. 법원 안팎에서는 상대적으로 소수인 개별 법관의 처우를 판사회의라는 다수결로 해결하려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은 17일 법원 내규인 법관 사무분담 기준을 표결에 부치기 위해 전체 판사회의를 연다. 부산지법 사무분담위원회가 지난 6일 의결한 이 기준에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인 변시 1회와 사법연수원 42기는 법조 경력이 사실상 같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대해 변시 출신 판사들은 “명백한 차별이고 상위법에도 맞지 않는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법조 경력은 변시 1회 판사들이 법원에 배치되기 시작한 2016년 사법연수원 기수를 대체할 의전 서열 기준으로 도입됐다. 법원조직법과 변호사법에 따라 사법연수원 수료나 변시 합격을 기산점으로 본다. 변시 1회(2012년 3월23일 합격)는 사법연수원 41기(2012년 1월18일 수료)와 불과 2개월 차이 나고, 사법연수원 42기(2013년 1월21일 수료)와는 10개월 차이가 난다.

그 이후 기수들 간 법조 경력 취득 시기 간격도 대체로 이와 비슷한데다 사법연수원 마지막 기수가 49기인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혼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또 법조 일원화에 따라 올해부터 사법연수원 41기와 변시 1회, 사법연수원 42기와 변시 2회가 각각 같은 5년 이상의 법조 경력을 인정받아 법관에 임용된 것과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법원과 달리 검찰이나 대형 로펌에서는 교통정리가 끝났다. 검찰은 사법연수원 41기와 42기 사이에 낀 변시 1회를 41.5기로 대우하고, 5대 대형 로펌은 같은 해 입사한 사법연수원 41기와 변시 1회를 동등하게 대우한다고 한다.

이런 논란의 불씨는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의 핵심 인물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제공했다.

임 전 차장은 2016년 2월1일 법원 내부 통신망인 코트넷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법관의 배치 및 인사 기준’이란 공지를 올려 합의부 좌우 배석 등 의전에서는 사법연수원 41기, 변시 1회, 사법연수원 42기 순으로 하되, 사무 분담과 관사 배정에서는 변시 1회를 사법연수원 42기와 똑같이 취급하겠다고 밝혔다. 법원 내 의견 수렴은 없었다. 당시 변시 1회 출신 판사들은 법조 경력 3년을 채우고 임관돼 신임 법관 연수를 받은 뒤 일선 법원에 배치되기 직전이라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변시 1회를 사법연수원 42기와 같이 보는 부산지법의 법관 사무분담 기준안은 임 전 차장의 공지를 근거로 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의 법원장 재임 시절인 2016년 말 춘천지법이 만든 관련 내규도 마찬가지다. 김 대법원장이 당시 사무 분담 기준을 판사회의에 맡긴 결과, 임 전 차장 공지대로 변시 1회와 사법연수원 42기를 같이 보는 내규가 전국 법원에서 처음 도입됐다. 춘천지법의 법관의 사무분담에 관한 내규에는 ‘법원장이 당해 연도 법관 사무 분담을 할 때 변시 1회 법관과 사법연수원 42기 법관(변시 2회와 사법연수원 43기, 그 이후에도 같다) 사이의 우선순위에 관하여는 법원행정처 차장 공지의 취지도 고려한다’고 못 박혀 있다. 춘천지법에 이어 서울북부지법, 창원지법 등도 판사회의를 거쳐 같은 취지의 내규를 이미 만들어 시행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변시 출신 판사들은 속수무책으로 속만 끓이고 있다. 소속 법원별로 반대 의사를 표하고는 있지만 사법연수원 출신 판사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서다. 전체 법관 2900여명 중 변시 1∼3회 출신은 100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변시 출신의 한 판사는 “변시 1회를 사법연수원 42기로 보는 건 같은 교육 기간인데 사법연수원 경력은 일부를 인정해 우대하고 로스쿨 경력은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 불합리하고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 “김 대법원장 방침에 따라 사법행정과 관련된 각종 의사 결정이 판사회의에 위임되고 있는데, 다수결이란 이름으로 소수자를 차별하는 규정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도입될지 두렵기까지 하다”고 토로했다.

김 대법원장 체제에서 제2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를 막기 위해 법원행정처 중심의 사법행정을 탈피하고 있으면서도 변시 출신 법관을 차별하는 문제의 지침은 따르려 하는 건 어불성설이란 비판도 제기된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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