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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죽음 부른 태안화력, 두달전 운송설비 안전검사는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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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낸 운반설비와 다른 컨베이어벨트 검사결과 모두 합격

김용균씨 가방에는 컵라면 3개와 과자 1개, 출근 앞두고 웃는 사진

김용균(24) 씨의 사망을 불러온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석탄 운반설비는 두 달 전 안전검사에서 합격 판정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하청 업체 노동자의 열악한 근무 조건과 함께 부실한 안전검사가 사고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일보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사망 추모 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고인을 향한 묵념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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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고용노동부가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태안 화력발전소는 지난 10월 11일부터 12일까지 이틀 동안 석탄, 석회석, 석고 등 운반설비 안전검사를 받았다.

안전검사는 민간 전문기관인 한국안전기술협회가 맡았다.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CV-09E' 컨베이어벨트도 검사 대상에 포함됐다. 검사는 맨눈 검사, 장비 검사, 작동 검사 등의 방법으로 진행됐다. 안전검사 항목은 컨베이어벨트 안전장치 정상 작동 여부, 노동자에게 위험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의 덮개 등 안전장치 여부, 통로의 안전성, 비상정지장치의 적절한 배치와 정상 작동 여부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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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는 김용균씨의 유품을 지난 15일 공개했다. 공공운수노조는 유가족과 함께 13일 사고현장 조사에 나서 해당 유품을 확보했다. 작업장에서 나온 김 씨의 유품으로는 사비로 산 손전등과 건전지, 부족한 식사 시간 탓에 늘 끼고 살던 라면과 과자, 김 씨의 작업복 등이 포함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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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항목은 전부 합격 판정을 받았다. 사고를 낸 운반설비뿐 아니라 다른 컨베이어벨트의 안전검사 결과도 모두 합격이었다. 그런데도 김씨는 두 달 뒤인 지난 11일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는 협착 사고로 숨졌다. 혼자 밤샘 근무를 하던 김씨는 비상정지장치인 '풀 코드'를 작동시켜줄 동료도 없이 참변을 당했다.

이번 사고의 주원인은 만약의 사고에 대비한 2인 1조 근무체제를 운영하지 않은 데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그 배경에는 비용 절감을 위해 하청 업체에 업무를 맡기는 '위험의 외주화' 구조가 있다.

민주노동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 동안 국내 5개 발전 기업의 산업재해는 모두 346건이고 이 중 하청 노동자 산재가 337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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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는 이달 11일 새벽 충남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 9·10호기에서 운송설비점검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김용균(24) 씨의 사진을 15일 공개했다. 고 김용균 씨가 지난해 9월 입사를 앞두고 자택에서 정장을 입고 씩씩하게 거수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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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는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태안 화력발전소의 안전보건 관리 실태 전반에 대한 특별감독에 착수했다. 과거 안전검사를 제대로 했는지도 감독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득 의원은 이번 사고에 대해 "노동자가 위험한 작업을 혼자 해 긴급 상황에 즉각 대처할 수 없었고, 안전과 직결되는 교육이나 안전검사도 미흡했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한편 김씨의 유품과 생전 영상이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2차 촛불 추모제에서 공개됐다. 지난해 9월 한국발전기술의 컨베이어 운전원으로 입사하기 직전 경북 구미 자택에서 찍은 영상에는 김씨가 첫 직장 출근을 앞두고 설레는 모습이 담겨 있다. 하지만 군 제대 후 7개월 만에 구한 첫 직장은 마지막 일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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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는 이달 11일 새벽 충남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 9·10호기에서 운송설비점검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김용균(24) 씨의 유품을 지난 15일 공개했다. 작업장에서 나온 김 씨의 유품으로는 사비로 산 손전등과 건전지, 부족한 식사 시간 탓에 늘 끼고 살던 라면과 과자, 김 씨의 작업복 등이 포함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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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공개된 유품에는 사비로 산 손전등과 건전지, 식사시간이 부족해 휴대하고 있던 컵라면 등이 있었다. 유품에는 모두 석탄가루가 묻어있는 상태였다. 컵라면 3개와 과자 1봉지는 오후 7시부터 오전 7시까지 쉴 틈 없이 이어지던 작업 중간 허기를 달래주던 것이라고 한다.

김씨의 친구로 추정되는 한 네티즌은 그의 생전 영상을 보고 페이스북에 “짧은 25년, 길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정말 고생 많았다”며 “올라가서는 힘들고 무거웠던 짐들을 날려버리고 가볍게 날아다녔으면”이라고 적었다.

그런가 하면 태안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서부발전㈜이 지난해 국회에 인명사고 발생 건수를 축소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서부발전 등에 따르면 2017년 국정감사 당시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보낸 2008∼2017년 발전소 인명 사상자 자료에서 서부발전은 '9년간 44건의 산재가 발생해 사망자가 6명'이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이 자료는 2011년 9월 28일 발전시설 외벽공사 중 하청업체 직원 3명이 추락해 2명이 숨진 사고와 2016년 2월 18일 컨베이어벨트 고정 공사 중 시멘트를 타설하던 하청업체 노동자 2명이 추락사한 사실은 누락한 것이다. 이들 사고 사망자 모두 하청업체 직원이었다.

한국서부발전 측은 사망자 축소 의혹에 대해 "국회에 낸 자료는 자체적으로 분석한 것이 아니라 고용노동부를 통해 산재 처리된 내용을 받아서 제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대전=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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