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은 한국 사회에 만연했던 성폭력·성차별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직장 등 조직 내에 숨어있던 '갑질' 문화의 민낯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가해자들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경우 되레 폭로자가 처벌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운동 초기부터 제기됐다.
실제로 미투 운동이 만 1년을 맞기도 전에 최근 들어 미투 참여자들이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를 당하는 사례가 하나둘 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폭로 내용이 사실이어도 수사기관이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하면 폭로자가 처벌을 당할 수 있다"면서 "현행법의 맹점 때문에 미투 운동과 같은 공익적 목적의 폭로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25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송파경찰서는 지난 4월 유명 콘텐츠 제작업체 '셀레브' 내의 상습적인 갑질과 성폭력을 폭로했던 김 모(31)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김씨는 올해 4월 19일 자신의 페이스북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당시 셀레브 대표 임 모 씨의 갑질·성폭력을 폭로했다.
김씨의 폭로는 "임씨가 직원들에게 일상적으로 욕설·폭언·고성을 퍼부었고, 회식에서는 기본 소주 3병을 마시도록 강권했으며, 2차·3차로는 남녀 직원을 모두 룸살롱에 데려가 여직원까지 여성 접대부를 선택하게 했다"는 내용이었다.
임씨는 폭로 이튿날 "회식을 강요하고 욕설·고성으로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준 게 사실이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사과문을 올렸고, 다음날에는 셀레브 대표직에서 사임했다.
그러나 임씨는 한달여 뒤인 6월 초에 김씨를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임씨는 고소장에서 김씨가 SNS와 언론을 통해 폭로한 내용이 모두 사실이 아니라며 자신의 사과문 내용을 뒤집었다. 그는 김씨에게 5000만원을 배상하라는 명예훼손 민사소송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을 수사하는 송파경찰서는 김씨를 허위사실 명예훼손 혐의로 입건해 수사하고 있지만, 참고인 진술에 따라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할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
올해 2월 언론계 미투에 앞장섰던 전직 기자 변 모 씨는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했던 한 언론사의 부장급 기자로부터 최근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올해 3월 미투 운동에 참여했던 저술가 은하선 씨도 이달 초 같은 혐의로 고소당했다.
법학계에서는 현행법과 기존 판례에서도 공공의 이익이 있는 폭로의 경우에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보는 점 등을 고려해, 사실적시 명예훼손 처벌 조항의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디지털뉴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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