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6 (수)

[박완규칼럼] 선거제 개혁 논의, 이번엔 다를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심상정 정개특위’ 개혁안 논의 / 대표성·비례성 높이는 게 과제 /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공론화 / 공천개혁·당내 민주화 병행해야

국회는 국민의 대표기관이자 정치적 공론장이며 국정 전반을 감시·견제하는 기능을 한다. 이런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 국가사회기관 신뢰도 여론조사에선 최하위다. 우리 사회의 온갖 갈등이 국회에서 해소되기는커녕 증폭되기만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정치참여 통로인 정당도 국민 관심사를 제대로 대표하지 못한다.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 열망이 뜨거운 이유다.

지난달 24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출범했다. 위원장인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2004년 진보정당이 원내정당이 된 이후 처음으로 주어진 위원장 자리이고, 개인적으로는 3선 의원을 하면서 첫 번째로 맡게 된 국회직”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정개특위를 “20대 국회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라 했다. 이번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언제 또 기회가 올지 모를 일이다. 정개특위는 2020년 총선의 룰을 정하는 일을 하게 된다. 각 정당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므로 합의를 이루기가 쉽지 않다.

세계일보

박완규 수석논설위원


이미 6개월의 활동 시한 중 절반을 허비한 정개특위는 공직선거법·정치자금법·정당법 관련 법안 260여건을 심의·의결해야 한다. 핵심 현안은 선거제 개혁이다. 정당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 간 괴리를 줄이기 위해 국민 대표성과 비례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가 여야정 국정 상설협의체 첫 회의에서 선거제 개혁에 협력하기로 합의했고, 같은 날 여야 5당 대표 회동에선 연말까지 선거법 개정안 마련에 노력하기로 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쟁점이다. 현행 국회의원 정수는 지역구 253명, 비례대표 47명으로 비례성이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각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을 배분하되 지역구 의석을 제외한 나머지 의석을 비례대표로 채우는 방식이다. 201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했고 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선관위 안은 의원 정수 300명을 권역별 인구비례에 따라 배분하되,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을 2대 1 범위에서 정하자는 것이다. 이럴 경우 지역구를 200명으로 줄여야 하는데 선거구 재획정 문제 등을 감안하면 실로 어려운 과제다. 정당별 입장 차도 크다. 선거제 개혁으로 다당제를 정착시키려는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적극적이지만,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은 미적지근한 반응이다.

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얘기가 나온다. 의원 세비와 특권을 줄이는 대신 의원 정수를 늘리는 방안이 제시됐지만, 반대가 만만치 않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선거제 개혁에는 찬성 의견이 많았지만, 세비·특권 대폭 감축을 전제로 한 의원 정수 확대에는 반대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국회 불신이 짙다. 의원 특권 내려놓기만 해도 말만 요란했으니 믿지 못하는 것이다.

자칫하면 선거제 개혁 논의가 또 헛물켤지 모른다. 방향이 제대로 설정됐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14일 정개특위 공청회에서 정치학자 강우진은 “유권자에게 선택을 강요해 만들어진 현재의 정당 구도에서 각 정당의 득표율을 좀 더 비례적으로 반영하는 선거제도를 채택하더라도 유권자의 대표성이 자동적으로 향상된다고 할 수 없다”면서 “비례대표제 확대와 비례대표 공천과정의 민주화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귀 기울일 만한 지적이다.

그들만의 개혁에 그쳐선 안 된다. 정치권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표성을 높일지를 고민하고, 정당공천 개혁과 당내 민주화·분권화 방안 등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각 정당이 자체 개혁안을 내놓고 조율해 합의안을 도출하는 게 올바른 순서다. 왜 바꾸려는지에 대한 엄밀한 논리적 설명이 수반돼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심상정 정개특위’는 이전의 정개특위와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심 의원은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했다. 고도의 정치력과 창의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그래야 국민을 설득해 선거제 개혁을 이룰 수 있다. 그러면 정치라는 가능성의 공간이 활짝 열릴 것이다. 미국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은 “정치의 질이 높아진다면 다른 면에서도 더욱 나아질 것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 정치개혁이 왜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 Segye.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