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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노트북을 열며] 벽에 걸린 ‘집권여당 원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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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승현 정치팀 차장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14일 오전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수진 최고위원이 한 발언 때문이었다. 간호사 출신에 연세의료원 노조위원장을 지낸 그는 노동 부문 지명직 최고위원이다.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에 당사자는 배제되고 성급하게 진행되는 듯해 아쉽습니다.”

이 최고위원은 회의 전날이 전태일 열사 추모일이라고 발언을 시작했고, 당과 정부의 정책에 불만을 나타냈다. 노동계의 양해를 구하고 있는 당에 대한 항의였다. 홍 원내대표는 달갑지 않다는 표정과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12일 홍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지역사무실을 점거한 한국GM 노조에 대해 “내가 노조와의 대화를 거절한 적 있느냐. ‘선거 때만 표를 구걸한다’는 매도엔 모욕감을 느꼈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진보 성향의 정부와 평행선을 달리는 노동계에 여당 원내대표가 서운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런데도 홍 원내대표의 표정과 발언은 아쉬움을 남긴다. 그가 자동차 회사에서 용접 업무를 했고, 노조 간부를 지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 달여 전 그가 소개한 사무실 벽에 걸린 그림이 더 큰 이유다.

그림의 제목은 ‘집권여당 원내대표’였다. 작가는 홍 원내대표의 대학생 딸이라고 했다. 멀리서 보면 붉은색 수탉인데 자세히 보면 닭의 부리가 사람의 손처럼 생긴 상상화다. 닭 부리에 있는 손은 닭의 입을 막고 있고, 꼬리 날개 쪽엔 손에 칼을 쥔 또 다른 손이 숨어 있다. 홍 원내대표는 “집권여당 원내대표 자리가 하고 싶은 말도 잘 못하고 가까운 곳에서는 누군가 칼을 겨누고 있다고 딸이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케이블TV의 예능프로그램에 처음으로 나와 이 그림을 소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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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집무실에는 자신의 딸이 그린 그림 '집권여당 원내대표'가 벽에 걸려 있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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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든 그림 속 손이 이날 회의에서 날을 세운 이 최고위원의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국회에 진입했다가 제지당한 민주노총 노조원들의 것이거나 ‘광주형 일자리’에 반발하는 현대차 노조일 수 있다. 입을 막은 다른 손은 욕설을 마다치 않으며 매사에 반대하는 야당 지도부 또는 빨리 성과를 보여 달라 재촉하는 청와대 누구의 것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골치가 아픈 모든 것과 마주해야 하는 게 집권여당의 원내대표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노조를 누구보다 잘 상대할 거라 생각했는데 홍 원내대표가 너무 발끈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멋진 벽그림까지 가진 지피지기의 원내대표라면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다. ‘촛불 청구서’를 내밀며 판을 키우는 노조에 ‘집토끼의 배신’이라고 노려보는 식은 안 된다. 어딘가에 ‘압도적인 지혜’가 있다는 믿음으로 대안을 찾고 또 찾아야 한다.

김승현 정치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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