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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사설] 약자 위한다는 정책이 서민 고용 참사 부르는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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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고용동향 또 최악 기록 경신

취약계층 몰려있는 업종 직격탄

소득주도 정책의 모순 돌아봐야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의 고용 상황이 달마다 최악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어제 발표된 통계청의 10월 고용 동향 성적표도 예외가 아니었다. 10월 실업자는 97만3000명으로 1년 전보다 8만 명 가까이 증가했다. 10월 기준으로는 외환위기 여파가 가시지 않던 1999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실업률(3.5%)도 10월 기준으로 13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정부가 그나마 내세우던 고용률도 아홉 달 연속 하락했다. 금융 위기 후 최장 기록이다.

눈에 띄는 점은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업종에서 일자리가 크게 준 것이다. 도·소매업(-10만 명), 숙박·음식점업(-9만7000명), 사업시설관리·지원·임대서비스업(-8만9000명)이 직격탄을 맞았다. 이들 업종은 영세 자영업자나 임시 근로자, 일용 근로자 등 사회적 취약 계층이 몰려 있는 곳이다. 서민과 약자를 위한다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오히려 이들에게 고통을 초래하는 역설이 계속되고 있다.

반면 세금을 쏟아부어 만든 ‘정부 주도 일자리’는 늘었다. 대표적인 재정 투입형 일자리인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 종사자는 10월에만 15만9000여 명 증가했다. 전체 취업자 증가 폭이 6만4000명으로 앞선 석 달보다 조금 나아지긴 했으나 재정 투입으로 만들어낸 일자리가 아니었으면 마이너스를 기록할 뻔했다.

수치가 이런데도 정부는 정책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시정 연설에서 소득주도성장 기조 유지를 천명한 가운데 2기 경제팀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도 같은 뜻을 비쳤다. 암울한 고용 수치를 매달 확인하면서도 잘못된 정책을 고집하는 것은 무모한 오기(傲氣)라고 볼 수밖에 없다. 소득주도성장의 부작용에 대한 지적은 국내 전문가만 하는 것이 아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의 성장률 전망을 낮추면서 ‘국내의 정책적 불확실성’을 부정적 요인의 하나로 꼽았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 법인세 인상 같은 정책이 외부 악재의 부정적 효과를 키우고 고용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충고다.

홍남기 후보자는 “경제 활력 제고를 통해 일자리 창출 여력 확충이 시급하다”며 이를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에 담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책 기조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없고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재정 투입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세금으로 ‘강의실 불 끄기’ 같은 잡일 수준의 일자리를 만들 게 아니라 민간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어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하며 “직접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객관적 수치는 거꾸로 가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이론을 고집하다 경제가 어려워지자 경제 1기 팀의 ‘투 톱’을 경질했다. 하지만 사람만 바꿔 봤자 소용없다. 잘못된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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