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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로 시작한 한해, `인형의 집`으로 마무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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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테이지-104]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이 쓴 '인형의 집'은 지금 생각하면 놀랍기만 하다. 1879년 입센이 발표한 '인형의 집(Doll’s house)'은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었다. '인형의 집' 얘기는 비교적 간단하다. 남편의 그늘에 살던 여성 노라가 스스로 가둬둔 굴레를 벗어난다는 얘기다. 지금으로 봐서는 전형적인 페미니즘 연극이지만, 입센이 이 작품을 쓴 시기가 19세기 중반이라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19세기 유럽 여성은 선거권은 물론 정당한 시민적 권리를 누리지 못했다.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이 사회적 통념이던 시절, 과감히 굴레를 떨치고 나가는 여성을 그린 입센의 역량은 놀랍기만 하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21세기 극작가가 19세기 노르웨이에 떨어진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비록 3막에 그치는 짧은 연극이지만, '인형의 집'은 페미니즘을 넘어 인생의 삼라만상을 모두 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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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은 개관 30주년 기념 공연으로 '인형의 집'을 선택하고 지난 6일 CJ토월극장 무대에 올리고 있다. 연출은 러시아 출신 거장 유리 부투소프가 맡았다. 그는 러시아는 물론 유럽을 대표하는 천재 연출가로 유명하다. 한국 무대도 꾸준히 찾아 2003년 '보이체크', 2008년 '갈매기'를 상연했다. 10년 만에 다시 찾은 부투소프는 '인형의 집'을 그만의 스타일로 재창조하며 한국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독특한 무대미학으로 유명한 시노그래퍼 알렉산드르 시시킨과 극의 감정선과 역동성을 살린 안무로 정평이 난 안무가 니콜라이 레우토프 또한 참여했다. 러시아 트리오가 선사하는 연극의 향연은 올해 최고의 연극으로 봐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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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에 앉으면 검게 드리운 휑한 무대가 눈에 들어온다. 화려한 인형의 집을 무대로 꾸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긋난다. 무채색으로 꾸민 무대와 연극은 현실이 얼마나 어두운지 명징하게 드러낸다. 배우들 연기 또한 과장하지 않는다. 대사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무용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무대가 바뀔 때마다 쏟아지는 각종 장르의 음악은 마치 종합예술을 보는 듯하다. 부투소프의 명성은 금세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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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주목을 끄는 지점은 배우들이 역할을 바꿔가는 것이다. 페미니즘의 본질은 남성과 여성의 소통이다. 양성은 서로의 입장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출산의 고통을 남성이 온전히 알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소통이 중요하다. 부투소프는 중요한 지점마다 배우의 역할을 바꿔 얼마나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가 부조리한지 표현한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아내 노라와 남편 토르발이 각자의 대사를 바꿔가며 같은 장면을 두 번 반복하는 시도는 압권이다. 연극이 이처럼 주제를 명료하게 드러낼 수 있는지 의문이 들게 할 정도다. 토르발이 노라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고,자신의 질서를 구축하는 것에만 집중했으며, 노라는 질서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남성과 여성 모두 분노케 한다. 남성과 여성이 상대를 하나의 인격을 갖춘 인간으로 보지 않고 서로의 질서 속에서 안온하게 지내려고만 하면서 많은 비극은 시작된다. 미투로 시작한 올해를 연극 '인형의 집'으로 마무리하면 내년은 보다 밝은 세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공연은 25일까지.

[김규식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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