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트레즈 교수, 건국대서 대담회…학생들 강의실 메우며 호응
토론하는 한국-프랑스 학자들 |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프랑스에서도 '미투(#metoo·나도 겪었다)' 운동이 일어나자 남성들이 '문제 제기를 부드럽게 하라'며 반발했습니다. 프랑스는 법적으로는 남녀가 평등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도 법이라는 틀부터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프랑스의 젠더사회학자 크리스틴 데트레즈(49) 리옹 고등사범학교 교수는 8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에서 '남성성의 위기'를 주제로 열린 대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주한프랑스문화원이 주최한 이날 대담회에는 데트레즈 교수와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 노정태 작가 등이 참석했다.
데트레즈 교수는 '한국에서는 프랑스가 성평등 선진국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실제로 프랑스 내 여성의 위치는 어떠하냐'는 질문에 "프랑스에서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법은 완벽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는 "임금 평등, 정치권의 남녀 성비 평등 등 여러 분야에서 남녀평등을 이루는 법적 틀이 마련됐다"면서 "그러나 실제로는 기업들은 큰 벌금을 물어도 남녀 임금을 맞추지 않고 있으며, 내각과 달리 선출직의 남녀 성비는 평등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어서 "또 여성부·교육부·문화부·보건부 같은 쪽에는 장관과 같은 요직에 여성이 많이 있는데, 사법부나 경찰 같은 분야는 그렇지 않다"면서 "고소득 여성은 가사노동을 안 하지만, 이를 아프리카 출신 등 저소득층 출신 여성들이 대신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프랑스에서도 올해 '미투' 운동으로 수많은 성폭력이 고발됐고, 이런 여성 운동에 대한 백래시(backlash·반격)도 있었다"면서 "미투의 일환으로 '너의 돼지(성폭력 가해남성)를 말해봐' 해시태그 운동이 일자, '너무 공격적이다. 부드럽게 문제 제기하라'는 반발이 있었다"고 전했다.
'남성성의 위기에 대하여' |
이처럼 여성운동에 남성들이 위기의식을 느끼는 이유에 관해 윤김 교수는 "남성은 (여성에 비해) 강자의 위치라는 관념이 기본값이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라면서 "남성은 '타격을 받는 것'에 굉장히 민감해하면서 '남성으로서의 힘'을 계속 복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윤김 교수는 "외환위기 때만 해도 남성이 아내와 아이의 경제를 부양하는 가부장제 모델이 유효했지만, 이제는 '3포 세대(연애·결혼·출산 포기)'가 됐다"면서 "지금의 남성들은 되레 여성혐오를 놀이화하면서 남성성의 위기를 상쇄하려고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근 한국 남성 사이에서 '오히려 남성이 역차별당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에 관해서 유일한 남성 토론자였던 노 작가는 "역차별은 자신의 속에 존재하는 무언가가 훼손됐다는 얘기일 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한국 남성이 가장 많이 얘기하는 것이 군대인데, 군대가 굉장히 피곤한 경험인 것은 맞지만 사회에서는 오히려 호봉을 더 쳐주는 등 실질적인 이득으로 작용한다"면서 "군대 내 부조리 등의 문제가 있지만, 그것은 군이라는 제도 자체가 갖는 부당함이지 여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차별이 아니다"라고 논박했다.
이날 강연에는 대학생 약 180명이 참석해 강의실을 가득 메웠다. 이들은 데트레즈 교수에게 활발하게 질문하며 토론했다.
데트레즈 교수는 이에 응답하며 한국의 '영영 페미니즘(메갈리아 이후 등장한 10∼20대 중심의 젊은 페미니스트들을 의미하며, 여성운동·여성학계에서는 1990년대의 영페미니즘과 구별하기 위해 영영페미로 지칭함)'에 대해서도 의견을 냈다.
그는 프랑스의 경우 '미러링'과 완전히 똑같은 형태의 시위 행위는 없지만 "수백 년 전부터 무의식적으로 주입돼왔던 남녀 차별을 역전시켜 보여주는 웹사이트가 있다"면서 "여성이 겪는 폭력을 압축해서 공공의 장소에 노출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평가했다.
윤김 교수는 "한국은 낙태를 처벌하고 있고 이별 범죄·디지털성폭력 등으로 여성이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면서 "체제가 허용하는 가능성 안에서는 사회 전복이 가능하지 않다. 한국의 여성은 메갈리아로 인해 비로소 '대항의 언어'를 가졌다"고 강조했다.
hy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