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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TF기획-사립유치원 파문 왜? <하>] 정치권·사립유치원 '담합', 현실 정치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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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유치원 명단을 공개한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동료 정치인들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다. 현실 정치의 이면을 보여준 박 의원이 지난달 25일 열린 유치원 공공성 강화 당정협의에 참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이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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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유치원 원장이 교비로 명품백도 모자라 성인용품까지 구입한 사실이 세간에 알려졌다. 이처럼 부당하게 교비를 유용한 사립유치원 명단이 공개되며 파문이 일고 있다. 유치원에 아이를 보낸 부모들은 일부 원장들의 일탈에 큰 충격을 받았고, 한국유치원총연합회는 명단 공개에 항의하며 휴원, 폐원 등의 카드를 다시 꺼내 드는 모양새다. 파문이 확산하자 정부, 교육청, 국회가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번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는 그동안 손 놓고 있었던 관계기관이 화를 자초한 성격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에 <더팩트>는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와 관련한 정부, 한유총, 국회 등을 통해 문제의 발단과 대안을 총 3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주>

비리 유치원 논란, 아이 볼모 잡은 어른의 민낯 (feat. 국회)

[더팩트ㅣ박재우 기자·임현경 인턴기자] "같은 당으로서 (동료 정치인들에게) 죄송하고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비리 유치원 명단'을 공개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31일 열린 사립유치원 비리근절을 위한 대안마련 정책 토론회에서 같은 당의 동료 정치인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박 의원은 이날 "광역·기초의원 등 지역 정치하는 분들이 유치원 원장분들과 다 친하다"며 "해당 지역 유치원 연합회와 1년에 2~3번 이상 간담회를 갖고 정책을 협의한다"고 밝혔다. 이어 "박용진이 이렇게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를 중심으로 지역 유치원 연합회를 건드려놔서, 우리 당 지역에서 정치하시는 분들이 감내할, 뒷감당을 해야할 부분이 너무나 크고 무겁다"며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면서도 다른 정치인에게 '사과'를 하는 박 의원의 모습은 정치권과 유치원 설립자들 사이의 유착이 얼마나 단단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립유치원 운영·회계 비리 문제는 이제야 수면으로 드러났지만, 이미 지역 사회에서 오랫동안 묵인해온 '담합'의 결과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이찬진 변호사는 이에 대해 "박 의원이 한 일은 지역내 카르텔(Cartel)을 흔든 것"이라며 "그가 다선 의원이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평했다. 김거성 전 경기교육청 감사관 역시 "현재 국민 대신 비리와 탐욕을 추구하고 비호했던 세력들이 드러나고 있다"며 "그런 '침묵의 카르텔'을 깨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용진 의원의 비리유치원 공개로 드러난 정치권과 사립유치원 집단의 유착 현실과 대책을 함께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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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의원 측은 박 의원의 말과 달리 "사립유치원 로비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국회 본희의장 전경. /이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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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권·사립유치원 '담합', 현실은?-의원·보좌진, 사립유치원 '모르쇠'로 일관…"로비·압박은 다 옛날 일"

여야 의원 측은 "사립유치원의 로비와 압박은 사라진 지 오래"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2016년 유치원 교사의 근로시간 준수 등 처우 개선을 위한 유아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철회한 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은 "유치원 단체의 압박은 없었다"고 말했다. 천 의원실 관계자는 "예산 문제로 인해 추가 검토가 필요해서 철회한 것인데 일부 언론에서 단체의 압박을 받았다고 보도해 곤혹스러웠다"며 "당시 해당 법안으로 그렇게 시끄러웠는지도 몰랐다"고 설명했다.

지난 대선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한유총이 주최한 사립유치원 교육자대회에 참석해 "(국공립) 대형 단설 유치원 신설을 자제하겠다"고 공약했다가 학부모들의 원성을 산 바 있다. 해당 공약을 제안한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은 전국국공립어린이집연합회 회장,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부회장 출신으로, 당시 "수요 공급 문제로 원아 모집이 안 되는 데 단설을 설립하면 사립유치원은 문을 닫아야 한다"는 취지를 설명했다.

최 의원실은 '외부의 입김이 있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지역구 의원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며 "보육환경 개선 차원의 문제지, 의원님과 어린이집이 그런 관계는 아니다"고 답했다. 이어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다르다. 두 단체를 같게 본다면 장애인, 노인 등 다른 직능단체도 마찬가지"라며 선을 그었다.

다른 의원실 관계자들도 "유치원 단체의 압박이나 지역 내 충돌은 없었다", "따로 입법 논의나 로비 시도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요즘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다 옛날 일이다" 등의 답을 내놨다. 이들은 박 의원이 거론한 '사립유치원과 정치권의 유착 관계'를 전면 부인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최근 불거진 논란을 둘러싸고 여야 의원들이 '눈치 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전국적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는 사안이지만, 사립유치원과의 차후 관계를 고려한다면 섣불리 나설 수 없다는 것이다.

국회 교육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예전부터 법안 마련이나 후원금 등 사립유치원의 대국회 업무가 활발했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라 했다. 그는 "정부가 시행령을 통해 회계시스템 개정을 시도했던 때에, 교육부를 피감기관으로 둔 국회가 압력을 넣은 일화도 있다"며 "유치원 단체가 국회를 통해 압박한 셈"이라 설명했다.

다른 의원실 관계자는 "사실상 지역구 의원은 유치원에 등을 돌리기가 힘들기 때문에 관련 법 개정을 꺼려하는 편"이라며 "일선 교육청에서는 유치원 문제를 거론하기만 하면 치를 떤다고 하더라. 그만큼 외압이 심하다는 것이다"고 실상을 전했다. 또, "지금은 박용진 의원 건으로 워낙 관심이 집중되다 보니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 이전에 크고 작은 이슈들이 있었을 당시에는 사립유치원이 아이들을 볼모로 국회를 압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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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용 입법로비'는 사립유치원과 정치권의 유착 관계를 방증한 대표적 사건이다. 신학용 전 의원이 지난 2016년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린 5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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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사립유치원 '담합', 현실은?'-신학용 사건'이 방증한 정치권과 유치원 유착

신학용 전 의원의 '입법 로비' 사건은 정치권과 유치원의 '정원유착(政園癒着)'이 드러난 대표 사례다. 지난해 7월 대법원에서 2년 6개월을 선고받아 복역 중인 신 의원은 법안 발의 대가로 한유총으로부터 3060만 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신 의원은 19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지난 2013년, 사립유치원의 상속·양도를 손쉽게 하고 사립유치원에 특화된 재무회계제도를 신설하는 유아교육법과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이는 당시 석호현 한유총 회장이 직접 만든 법안을 일부 수정한 것으로, 사립유치원 운영자들의 숙원이기도 했다.

해당 법안은 신 의원이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자진 철회됐으나, 당시 신 의원과 함께 법안을 발의한 의원(유아교육법 32명, 사립학교법 34명) 명단은 주목할만하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황우여 전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 이찬열 교육위원회 위원장 등이 당시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신 의원과 뜻을 함께 했던 이들은 법안 내용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채 이름만 올린 경우, 뇌물 수수 정황은 알지 못했으나 법안의 취지에 공감한 경우, 사립유치원 관계자의 요구에 응한 경우 등의 해명을 내놓았다.

신 의원에게 뇌물을 건넨 석 전 회장은 여전히 정계에 발을 딛고 있다. 뇌물공여 혐의로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은 그는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로 화성시장 선거에 출마한 바 있다. 석 전 회장의 과거 행적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를 화성시장 후보로 공천한 한국당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직 유치원 교사 A씨는 "한유총과 정치권의 결탁이 워낙 끈끈해서, 교사들은 비리 유치원 문제가 수면으로 올라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대선 무렵 한유총이 '특정 정당의 선거인단을 모집한다'는 단체 문자를 보내왔다"며 "교육기관 단체가 대놓고 특정 정당에 도움을 주는 점을 납득할 수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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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현 전 한유총 회장은 신학용 전 의원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으며, 이후 자유한국당 소속 화성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석 전 회장이 화성시장 후보였을 당시 홍문표 한국당 의원과 나란히 사진을 찍은 모습. /석호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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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사립유치원 '담합', 현실은?-'박용진 3법'에 남은 과제들

박 의원이 발의한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일부개정안)'을 당론으로 삼으며 비리 유치원 타진 의사를 표명한 여당은 지난달 31일 토론회에서 다시 한 번 각오를 드러냈다.

조승래 민주당 교육위 간사는 이날 "'박용진 3법'을 11월 8일께 상임위 전체회의에 상정하고, 이후 법사위로 보낼 것"이라며 "11월 15일에는 의결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상식적인 내용을 담았기에 반대가 없으리라 보고, 속도감 있게 처리하겠다"고 덧붙였다.

남인순 민주당 유치원어린이집공공성강화특위 위원장은 "사실 국회가 그동안 제도적으로 마련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며 "이걸 계기로 박용진 3법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신속히 처리될 수 있도록 당과 특위 차원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 강조했다.

박 의원이 밝힌 박용진 3법의 주된 목적은 △사립유치원의 투명한 회계시스템 도입 의무화와 셀프징계 차단, △횡령죄 적용이 가능한 지원금의 보조금 전환 △유치원 급식을 안전하게 하는 것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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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 3법' 앞에는 몇가지 과제가 남아있다. 법안이 가진 맹점을 보완하고 수정하는 것이다. 가장 문제 되는 부분은 유치원운영위원회의 역할과 실효성이다. 개정안 중 유아교육법 제19조4에는 사립유치원 운영위원회의 기능을 자문 성격으로 규정하는데, 이 경우 실질적으로 운영위의 의사가 유치원 운영에 반영되기 어렵다는 게 주된 의견이다.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이를 두고 "정원 20명 이상 사립유치원에만 의무 설치하도록 된 운영위원회의 규정을 확대 강화하는 한편, 현재 자문기구인 운영위원회를 심의기구로 격상하도록 관련 규정을 손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성실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 역시 "유치원 먹거리와 회계 등 내부 문제를 조목조목 알고 있는 학부모들이 운영위원회에 적극 참여하는 한편, 운영위원회를 심의기구로 격상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립학교법 제52조, 제74조에 신설하는 '위규 행위에 대한 과태료 처분'도 도마에 올랐다. 이찬진 변호사는 "보고 불이행· 징계요구 불이행·해임요구 거부는 모두 징계 명령이나 시정명령의 대상인데, 행정적 제재와 형사적 처벌을 면제하고 과태료 처분으로 종결하는 결과가 초래될 위험이 크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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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열린 사립유치원 비리근절을 위한 대안마련 정책 토론회에서는 '박용진 3법'의 보완·수정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박 의원이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모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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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민주연구원 원장은 "'박용진 3법'의 좋은 취지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의견 수렴을 통한 보완·수정 과정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오세훈법'의 애초 취지는 좋았으나 지금은 이 법안이 현실에 맞느냐를 고민하고 있다. 박용진 3법은 이런 (토론) 자리를 통해 최초의 출발부터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 완성된 법안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며 최근 후원금 쪼개기를 유도한다는 지적을 받는 '오세훈법(정치자금법 개정안)'을 예시로 들었다.

관계자들은 3법 발의 이후에도 국회의 행보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신애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는 "이번 사건을 통해 피해를 본 건 아이들이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가장 큰 당사자성을 갖는다"며 "3법 이후에도 4법, 5법 등이 계속 마련되는 그 날까지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소라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아동위원장변호사는 "아이들을 안심하고 믿고 맡길만한 유치원에 보내고 싶다는 시민들의 바람을 법에 풀어내는 게 국회와 정당의 역할"이라며 "문제가 사그라든 뒤엔 역풍과 반격이 몰려올 것이다"고 했다. 이어 "끝까지 지켜보고 응원하는 우리의 힘이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과 정의당 등 누구 하나 소외됨 없이 힘을 합쳐 11월 안에 가닥을 잡고, 정기국회 안에 개정안이 통과됐으면 좋겠다"며 3법 통과 의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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