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 정신적 고통 지나치게 가볍게 봐”
권순일·조재연·민유숙 대법관도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보충의견 통해
“특혜가 아니라 민주주의 가치 지키고
모든 국민 인간 존엄 누리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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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하는 것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특혜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권리만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공동체에서 다를 수 있는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며, 이로써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
김재형 대법관이 1일 오전 대법정에서 밝힌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이 주목받고 있다. 대법원 선고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수정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공동체에서 다를 수 있는 자유’라는 말이 판결문에 나오기까지 오랜 세월 감옥에서 지내야 했던 병역거부자들이 떠올라 감격스러웠다”고 말했다.
김 대법관과 함께 권순일·조재연·민유숙 대법관은 판결문 20쪽 분량의 보충의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의 의미를 밝혔다. 이들은 “양심의 자유는 인간 존엄의 필수적 전제로서 인간으로서 가지는 보편적인 권리다. 개인의 내면적 양심은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으며 설령 국가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는 형사처벌을 감수하고 양심을 지키느냐 아니면 양심을 버리고 형사처벌을 면하느냐는 선택만이 존재한다. 내면적 양심의 포기와 인격적 존재가치의 파멸을 강요당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양심을 지키는 통로를 열어두어야 한다. 이조차 허용하지 않는다면 헌법이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사실상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다”고 이들은 덧붙였다.
김 대법관 등은 ‘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거부의 정당한 사유가 아니’라는 반대의견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들은 먼저 법원의 역할을 강조했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대체복무제 입법으로 해결할 문제”라는 반대의견에 “학업이나 생업에 전념하고 사회와 국가를 위해 기여해야 할 젊은이들이 오랜 기간 수사와 재판을 받아왔고 대법원 판단만을 기다리는데,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 이들에게 신속하게 판단을 내려줘야 한다”고 밝혔다.
또 “양심적 병역거부는 소수에 대한 부당한 억압 문제가 아니”라는 반대의견은 “결국 다수가 허용하지 않으면 양심적 병역거부는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고, 다수의견은 바로 이러한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소수자 문제는 다수결을 통해 해결할 수 없다. 다수결을 통해 해결되지 못하고 남은 것이 소수자 문제다. 더욱이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영역의 하나인 병역과 관련한 소수자 문제로 법원이 이 문제를 회피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민주주의 사회는 다수와 다른 신념을 가진 소수자들을 관용하고 포용함으로써 사회구성원으로 함께 공존하는 것을 지향한다”고도 덧붙였다.
한국의 ‘엄중한 안보 상황’을 내세운 반대의견도 이들은 반박했다. 이들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서 우리나라의 안보 현실이 엄중하다는 데 전적으로 뜻을 같이한다”면서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형사처벌하더라도 이들은 교도소에 수감될 뿐 병역자원이 되지 않고 우리나라의 경제력, 국방력 등에 비추어 볼 때 형사처벌하지 않는다고 하여 국가안전보장과 국토방위에 위협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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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정에서 보충의견을 낭독한 김재형 대법관은 이날 선고된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의 주심이다. 김 대법관은 2016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절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대법관에 임명됐다. 민법 권위자로 민사판례연구회 회원이기도 했다. 그는 2002년 출판한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의 <양심적 병역거부>란 책에 실은 글에서 “양심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도록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약자의 권리보호에 관심이 많다고 알려졌는데, 지난해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희귀병을 업무상 재해로 판단하며 원인이 불명확한 질병의 산재 인정 기준을 넓힌 판결의 주심이기도 했다.
김 대법관은 10월30일 일본기업 강제동원 손해배상 대법원 판결에서도 김선수 대법관과 밝힌 보충의견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들은 “일본 정부의 불법적인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수행과 직결된 일본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로 강제동원되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지 못한 채 온갖 노동을 강요당했던 피해자들은 정신적 손해배상을 받지 못하고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을 지나치게 가볍게 보고 그 실상을 확인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 청구권협정을 체결한 것일 수도 있다”며 “청구권협정에서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을 명확하게 정하지 않은 책임은 협정 체결 당사자들이 부담해야지 피해자들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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