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헌씨. |
종교적 이유로 병역 의무를 거부한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내려진 1일 오전 대법원 2호 대법정에 있던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승헌(34·사진)씨는 재판 내내 상기된 표정이었다. 2013년 군 입대를 거부해 재판에 넘겨진 뒤 1·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그였다.
재판장인 김명수 대법원장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게 제재를 가하는 것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에 위배된다"라는 대목을 읽어 내려가자 오씨는 입을 꼭 다물었고, "사건을 파기 환송한다"는 주문을 읽자 그제서야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함께 온 변호사들과 동료들은 "축하한다", "고생했다"며 축하했다. 몇몇 방청객은 "14년 만의 판례를 뒤집은 선고가 감격스럽다"며 대법정 안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종교적 병역 거부 문제는 끊임 없는 논란거리였다. 1969년 7월 22일 처음으로 대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이 판례는 이날 판결까지 49년 동안 이어졌다. 당시 재판부는 "‘애호와(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종교를 신봉하는 크리스토인(그리스도인)의 ‘양심상의 결정’은 헌법 제17조에서 보장한 양심의 자유에 속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후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이 문제를 다뤘지만 기존 판례를 유지했다.
이날 판결 직후 대법원 주변에서는 "판결을 지지한다"는 환영 기자회견이 이어졌다. 오씨는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들에게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용감한 판결에 감사드린다. 국민의 수준 높은 관용에 대해서 실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지난 세월 동안 2만여 명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인내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판결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와 군인권센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등 진보 성향 단체들은 이날 낮 12시쯤 대법원 앞에서 집회를 갖고, "법원도 인정했다. 양심의 자유 보장하라", "평화가 이겼다. 병역거부자 석방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동문 앞에서 국제엠네스티한국지부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환영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뉴시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하지만 판결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왔다. 김영길 바른군인권연구소 대표는 "이번 판결은 정치적 판단이었고 심히 유감"이라며 "현재 성실히 군 복무를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어마어마하게 느낄 수 있는 결정이었다"라고 했다. 이어 "현역 복무에 대한 군 가산점 제도 재도입을 추진하는 등 방침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겠다"고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 등에서도 "특이한 소수의 인권에 눈이 멀어 대다수 선량한 국민의 인권은 무시했다", "종교적 신념 이외에도 개인의 양심에 근거한 병역거부도 모두 인정돼야 마땅하다"는 등의 글이 올라왔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대법원 판결을 무효화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30여 건 올라왔다.
이날 판결은 9대 4로 엇갈린 의견이 나왔다. 대법관 13명 중 김소영·조희대·박상옥·이기택 대법관이 반대 의견을 냈다. 김 대법관 등은 "기존 법리를 변경해야 할 명백한 규범적, 현실적 변화가 없음에도 무죄를 선고하는 것은 혼란을 초래한다"며 "대체복무제 도입으로 해결해야 할 국가 정책의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헌재 결정으로 사실상 위헌성을 띠게 된 현행 병역법을 적용해 서둘러 판단할 것이 아니라 대체복무제에 대한 국회입법을 기다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김명진 기자]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