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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 (수)

이슈 '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 70년만에 역사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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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은 기본권에 대한 본질적 침해”

[아시아경제 장용진 기자] 종교적 혹은 개인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가 대법원 판결로 마침내 합법화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1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모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방법원 합의부로 돌려보냈다. 이로서 6.25전쟁 와중에 의무복무제가 도입된지 70여년만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한때, 양심적 병역거부로 투옥됐다 출소하는 사람에게 입영영장을 발부해 곧바로 다시 체포하는 사례까지 있었지만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장면이 됐다.

대법원은 “병역은 병역의무자의 개별적 상황을 고려해 부과 여부와 종류 면제 등을 결정해야 한다”면서 “대다수의 다른 이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이유로 의무를 감당할 수 없는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판결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처벌이 “인격적 파멸이나 기본권에 대한 본질적 침해가 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국가가 개인에게 양심에 반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불이익에 대해 형사처벌 등 제재를 가해서 소극적 양심실현을 제한하는 것은 기본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라고 판단했다.

이는 질병이나 가사를 이유로 한 입영거부를 법 테두리 내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양심을 이유로하는 입영거부 역시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판단으로 UN자유권위원회의 권고마저 냉정하게 뿌리치고 징역형을 선고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2004년 당시 대법원은 “유엔 권고안은 법률적 구속력이 없다”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병역거부자에 대해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고, 그 이후 14년 동안 징역 1년6월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표준형량’이 됐다.

법조계에서는 지난 6월 헌법재판소의 병역법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오면서 대법원의 태도 변화가 어느 정도 예견됐었다고 설명한다.

앞서 지난 6월28일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것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며 병역법 제5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병역기피자를 처벌하는 제88조 1항에 대해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외 다른 병역기피자들까지 처벌을 피할 우려가 있다”면서 합헌결정을 내려 논란을 낳기도 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병역법 제88조 1항의 해석을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구제해야 한다는 뜻을 헌재가 대법원에 전한 것”이라고 면서 “전체적인 맥락상 제88조 1항을 양심적 병영거부자에게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헌정위헌’ 결론을 내린 것과 다름없다”라고 설명했다. 내용상 한정위헌 결정을 해야하는데 한정위헌을 법률 해석 문제로 보아 인정하지 않는 대법원 판례를 고려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오늘(1일) 판결에 대해 법조계는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인 백주선 변호사(46, 사법연수원 39기)는 “늦었지만 환영한다”면서 “보편적 인권과 양심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볼 때 헌재에 이어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 것은 당연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장용진 기자 ohngbear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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