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오늘(30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한·일 청구권 협정과는 별개로 불법적인 강제징용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최종 판단이 나온 것이죠. 일본은 즉각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데, 오늘 최 반장 발제에서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승소 소식을 자세하게 짚어보겠습니다.
[기자]
1924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이춘식 할아버지. 보통학교를 졸업한 이 할아버지는 일본으로 가 2년만 일하면 기술 자격을 얻을 수 있고 조선에 돌아오면 기술자로 대우받는다는 신일본제철의 이 모집 광고를 보고 지원을 했습니다.
[이춘식/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어제) : 열일곱 살 때 갔지. 열일곱 살 때나 될 것이네. 일본 가서 기술도 배우고, 가서 공부도 하고. 일본이 그 때 문명국가 아니야? 우리 한국, 우리 조선보다 나은 데고.]
이렇게 부푼 꿈을 안고 바다 건너 문명 국가라고 생각했던 일본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이 공장이라던 곳은 사실상 지옥과 다름 없었는데요. 철광석이 녹아드는 뜨거운 용광로 앞에서 이 열일곱 청년의 꿈도 서서히 녹아들어 갔습니다.
[이춘식/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어제) : 다쳤지. 가다가 엎어지니까 상처 나서. 거기서 그러면 일 못하겠으니까 병원에서 입원시켜놓고 치료해줬지. 검사해보니까 배가 잘라지지는 않았지만 큰일 났던 거지.]
그래도 이 머나먼 타지에서 먹여주고 재워주는 데 감사했고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을 월급을 모아 고국으로 돌아가는 날만을 기다렸습니다.
[이춘식/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어제) : 돈은 어디 월급이라고 봉투 주고 그런 기억이 안 나. 그런 기억은 몰라. 다 노무과에서 하는 일이라. 우리는 일만 꼬박꼬박 그야말로 규칙만 지켜줬지.]
그렇게 2년, 또 3년이 흐르고, 그러다 일본군에 징집이 됩니다. 당시에는 일본법이 곧 우리법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였으니 이 할아버지는 속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1945년 일본이 패망한 뒤 못 받은 돈을 받기 위해 공장을 찾아 갔지만 이미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있었습니다.
[이춘식/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어제) : '돈 줘요. 내가 전부 가져갈 거야' 했더니, '여기 부서졌는데 뭐가 있겠냐? 그냥 여기서 살자' 그러더라고. 살자고 하는 것을 내가 못 살겠으니까 여기 왔지. 돈이라는 건 못 받았지.]
이러한 사연은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앞서 여운택, 신천수 할아버지. 1997년 일본 오사카 법원에 못 받은 임금과 손해배상금을 달라며 소송을 냈지만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일본에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면서 결론을 내립니다.
일본 내 법정 투쟁이 이렇게 허망하게 끝난 뒤 피해자들은 우리 법원에 손을 내밉니다. 여운택, 신천수, 김규수, 이춘식 할아버지는 2005년 서울중앙지법에 "1인당 위자료 1억 원을 달라"며 소송을 냈지만 당시 법원은 "시효가 지났고 일본 재판의 효력이 인정된다"며 기각합니다. 서울고법 또한 같은 이유로 기각합니다. 그러나 2012년 5월 대법원은 1, 2심 판결이 잘못됐다며 파기환송을 하고 2013년 7월, 서울고법은 신일본제철을 향해 "피해자들에게 1억 원씩 지급하라"고 명령합니다. 이때, 신일본제철이 재상고했지만 우리나라 최고법원의 결정이 번복될 리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피해자들의 한이 70여 년 만에 풀리나 싶었지만 발목을 잡은 것은 우리 정부와 사법부였습니다. 대법원은 최종 선고를 차일피일 미루다 5년 동안 결론내지 않았는데요. 그 배경에는 양승태 사법부와 박근혜 청와대의 거래가 있다는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장과 대법관, 그리고 외교부장관이 비밀회동을 갖고 또 심지어는 "비서실장이 기각을 기대할 것"이라는 행정처 문건도 등장합니다.
[이춘식/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어제) : 우리 대한민국 대통령이 야물지 못하니까 이렇게 안 주고 빌빌 미룬다냐? 그러면 똑똑히 뭘 한다냐? 그렇게 해야 할 텐데…]
그리고 오늘입니다. 한국 법원에 소송이 제기된지 13년8개월만에 최종 판단이 나왔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신일본제철이 강제징용 피해자 4명에게 1인당 1억 원씩 지급해야 한다"는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쟁점은 크게 2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배상 책임이 없다고 본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의 효력이 우리 법원에까지 미치는지 여부입니다. 대법원은 "일본 판결은 우리 헌법 가치와 충돌하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하나가 핵심 쟁점이었는데요. 1965년 우리 정부가 일본과 체결한 한·일 청구권 협정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이 5억 달러를 제공하면서 양국의 청구권 문제가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한 것을 근거로 일본 측은 개인의 청구권도 사라졌다는 주장이었는데요. 반면 2012년 대법원은 "일본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당시 청구권 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라고 판단을 했습니다. 오늘 대법원의 최종 판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김명수/대법원장 : 청구권 협정의 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의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이 청구권 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늘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 따라 당분간 한·일 관계는 냉각 상태로 접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청구권 문제는 이미 해결이 됐다"던 일본 정부는 곧바로 불만을 표시했는데요. 고노 외무상, "국제재판을 포함한 모든 선택지를 놓고 대응하겠다"고 반발했고요. 조금 전에는 이수훈 주일 한국 대사를 초치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발제 이렇게 정리해보겠습니다. < 대법원, 강제징용 손해배상 확정…"개인 청구권 소멸 안 돼" > 입니다.
최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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