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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협정과 손해배상 무관’ 논리 1심 때 이미 구성
-2012년 대법원 판결 난 사안 6년 끈 대법원 ‘뒷북’ 판결
-검찰, 박근혜 정부 요청으로 선고 미뤘는지 수사 중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으로부터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왔다. 1965년 체결한 한일청구권 협정을 극복하고 사법주권을 확인했지만, 최종 결론이 나오기까지 13년이나 걸리면서 대법원은 ‘심리를 지연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30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여운택 씨 등 4명이 일본 기업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재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판결로 여 씨 등은 각각 1억 원을 신일철주금에 청구할 권리가 생겼다.
원고 4명 중 여 씨를 포함한 3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올해 94세인 이춘식 씨만이 유일하게 확정 판결을 지켜봤다. 고인이 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유족들이 상속받아 행사할 수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의 쟁점은 한·일 청구권 협정에도 불구하고 피해들에게 피해 배상을 요구할 권리를 인정할 것인가였다. 재판부는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한ㆍ일 양국 간의 재정적ㆍ민사적 채무관계에 관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청구권협정 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자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했다”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 협정 적용대상에 포함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6년 전 대법원에서 이미 구성했던 내용이다.
당시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과 미쓰미시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배상청구권을 인정했다. 당시 판시 사항을 보면 청구권협정이 양국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결론지은 것은 물론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자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했다”는 논거도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
소송을 낸 원고들은 1억 원을 배상받게 됐다. 소송을 낸 피해자들은 구체적인 강제징용 임금 액수를 산정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받아낼 수 있는 금액을 고려해 1억 원만을 청구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실제 지급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2003년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결론을 확정지었다. 신일철주금은 일본 기업이기 때문에, 우리 대법원이 최종 판결을 내리더라도 일본에서의 승소 판결 내세워 배상을 거부하면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 우리 대법원이 일본 법원에 ‘강제집행을 승인해달라’고 요청할 수는 있지만,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일본 법원이 스스로 자신들의 판결이 잘못됐다고 자인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다만 신일철주금이 국내에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면 그 재산에 한해서는 일본 법원의 승인과 무관하게 집행을 할 수 있다.
그동안 대법원은 여러 차례 심리를 지연해왔다.
2005년 제기된 소송에서 1심 결론은 3년 만에 원고 패소로 결론났다. 1년 뒤 항소심에서도 같은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이 때도 신일철주금이 징용 가해자였던 ‘일본제철’과 같은 회사로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 배상 책임을 부정했을 뿐, 청구권협정에 의해 위자료 청구권이 소멸하지는 않았다고 봤다. 2012년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 취지로 ‘다시 심리하라’는 판결이 나왔고, 이듬해 서울고법은 1억 원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재상고심을 접수한 후에도 무려 5년이나 선고를 미룬 끝에 단 한 명의 원고만이 살아남은 이후에서야 뒤늦은 판결을 확정지었다.
검찰은 대법원이 박근혜 정부 외교부와 소통해 고의로 심리를 지연한 정황을 확인하고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하는지에 관해 수사 중이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2013년에는 차한성(64·사법연수원 7기) 전 대법관이, 2014년에는 박병대(61·12기) 전 대법관이 법원행정처장 자격으로 김기춘(79)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을 찾아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대응방안을 논의한 사실을 확인했다.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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