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8년 대구 여대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무죄가 확정된 스리랑카인 K씨./조선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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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법무부에 따르면 스리랑카 검찰은 1998년 10월 17일 여대생이던 피해자 정은희(당시 18세)양을 성추행한 혐의로 K씨를 지난 12일(현지 시각) 기소했다. 20여년 전 사건이 발생한 지 7300일 만이다. 공소시효 나흘(19년 11개월 25일째)을 남겨둔 시점이었다. 스리랑카에서는 살인·반역죄를 제외한 모든 범죄의 공소시효가 20년이다.
K씨가 용의자로 지목된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계명대 간호학과에 다니던 정양은 1998년 10월 17일 오전 5시 10분쯤 대구 구마고속도로 위에서 23톤 트럭에 치여 숨진 채 발견됐다. 속옷이 벗겨진 채 겉옷만 입은 상태였다. 누구나 성폭행을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관할이던 달서경찰서는 단순 교통사고 처리했다. 근처 풀숲에서 정양의 속옷이 발견됐지만, 경찰은 이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이 2013년 다시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과정에서 정양 속옷에 묻어 있던 정액은 DNA 검사를 통해 스리랑카인 K씨의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건 발생 15년 만이었다. 그러나 강간죄(5년)나 특수강간의 공소시효(10년)가 지난 때였다. 검찰은 K씨가 정양의 소지품을 빼앗았다는 당시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확보해 공소시효가 15년인 특수강도강간죄를 적용했다.
1심은 K씨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강도 증거가 부족해 특수강도강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게 무죄 이유였다. ‘강도’를 뺀 특수강간죄로는 공소시효가 10년이어서 K씨를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검찰은 2심에서는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다른 스리랑카인 A씨를 새로운 증인으로 내세웠다. K씨 등이 성폭행 과정에서 정양 가방에서 학생증과 책 세 권 등을 챙겼다는 증언을 확보한 것이다. 그러나 2심 재판부도 "증인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대법원도 2년여의 심리 끝에 2심의 결론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K씨의 범행 정황을 증언한 스리랑카인 증인·참고인의 진술이 객관적 상황이나 진술 경위에 비춰볼 때 진실성을 믿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부 믿을만한 내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해당 진술과 DNA 감정서만으로 피해자의 소지품을 강취(強取)했다는 사실까지 증명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본국으로 강제추방된 K씨의 처벌 방안을 고민하던 검찰은 스리랑카 법상으로는 공소시효가 남은 사실을 확인, 당시 대구지검 수사를 이끌었던 김영대 서울북부지검장을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했다. 한국은 스리랑카와 형사사법공조 조약 미체결 국가지만 검찰은 1000 페이지에 달하는 증거서류를 번역해 전달하고, 스리랑카를 2차례 직접 방문해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스리랑카도 한국에 수사팀을 파견해 참고인 조사를 벌이는 등 협조한 끝에 결국 K씨를 현지 법정에 세우게 됐다. 작년 7월 우리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한 지 451일만이다. 다만 K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법무부가 요청한 강간죄가 아닌 성추행죄다. K씨 DNA가 피해자 몸이 아닌 속옷에서 발견된 점, 강압적 성행위를 인정할 수 있는 추가 증거가 없는 점 등이 근거가 됐다.
법무부는 "스리랑카 사법당국으로서도 2006년 형법 개정 후 최초로 국외 발생 범행을 기소한 사안"이라며 "공판과정에서도 스리랑카 검찰과 협조해 ‘범인필벌’이란 사법정의 구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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