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금 마음대로 써도 처벌 안받아
"기존 판례보면 횡령죄 처벌 불가능"
지원금→용도 규정된 보조금으로 변경 추진
지난 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열린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 토론회 : 사립 유치원 회계부정 사례를 중심으로’에서 박 의원이 토론회 개최를 반대하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 회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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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소연 기자] 매년 2조원에 달하는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정부 지원금이 투입되고 있지만 현행 법은 사립유치원장이 이를 마음대로 써도 횡령죄를 묻기 어렵다. 현재 유치원 원장이 누리과정 지원금을 유용해도 환수가 불가능하고, 처벌도 받지 않는다.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을 공개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5일 유아교육법, 사립학교법, 학교급식법 개정안 입안·의뢰 검토서를 국회 법제실에 제출했다. 누리과정 지원금을 보조금 명목으로 바꿔 처벌이 가능하도록 하고, 사립유치원의 회계 부정비리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현재 유치원은 △정부지원금 △정부보조금 △학부모분담금으로 재원을 쓰고 있다. 올해에만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으로 1조8341억원의 국고가 투입됐다. 사립유치원은 이 예산을 △누리과정 지원비(22만원) △방과후과정(7만원) △교사처우개선비(59만원) △학급운영비(25만원) 등으로 활용한다.
정부가 지난 2012년부터 누리과정 지원금 지급을 시작한 이후 시도교육청은 사립유치원 감사에 나섰다. 교육청 감사에서 사립유치원이 정부 지원금을 횡령·유용한 사실을 적발하면 사립학교법을 근거로 징계처분을 내린다. 이때 유치원 원장이 설립자일 경우엔 스스로 징계하는 ‘셀프 징계’를 해야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사립학교법상 징계를 내리는 주체는 법인에 있는데, 사립유치원은 법인이 있는 경우가 드물고 설립자와 원장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유치원장이 회계 비리를 저지르고 징계를 받아도 유치원 이름만 바꿔 다시 유치원을 차리는 경우도 있다. 이때도 교육청이 제재할 방법은 없다.
감사를 통해 지원금을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심각한 부정을 적발하면 교육청은 수사기관에 고발하게 된다. 그러나 이마저도 누리과정 국가 예산은 명목상 ‘지원금’으로 분류되면서 횡령죄를 적용받지 않는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유용한 금액이 크거나 사안이 심각할 때 수사기관에 고발한다”며 “다만 수사기관에 고발해도 지원금을 유치원장이 마음대로 사용했을 때 횡령죄를 물을 수 없다는 기존 판례가 있어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로선 사립학교법 위반으로 행정처분만 내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기존 판례에 따르면 누리과정 지원금은 학부모 부담금으로 판단한다. 사립학교법을 적용 받아 학부모 부담금은 사립학교 경영자의 소유로 본다. 현재로선 유치원 원장이 누리과정 지원금을 유용하면 환수도 불가능하고, 횡령죄를 물을 수 없어 처벌이 안 된다.
2011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업무상횡령·사립학교법 위반에 관한 판례를 보면 “사립학교의 학생이나 학부모가 납부한 수업료 기타 납부금은 일단 학교법인이나 사립학교 경영자의 소유”라고 판단했다. 이어 “이를 임의로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사립학교법 위반죄 외에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2012년 보조금반환처분취소 관련 소송 판례에서도 마찬가지 결과였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현재까지 일부사안은 소송을 진행 중이고, 앞서 지원금을 유용해 고발한 경우 횡령죄가 성립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교사처우개선비·학급운영비 등 ‘보조금’은 횡령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용도가 규정된 보조금은 유용하면 처벌을 할 수 있다. 이에 유아교육법을 개정해 사립유치원 지원 항목을 ‘지원금’에서 ‘보조금’으로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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