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교무부장과 쌍둥이 자매, 경찰서 혐의 부인
숙명여고 "혐의 인정되면 선도위원회서 학생 징계 결정"
교육계 "혐의 사실로 확인되면 퇴학 등 최고 수준 징계 나올듯"
서울 강남 숙명여고 시험문제 유출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 수서경찰서가 의혹의 당사자인 2학년 쌍둥이 자매의 휴대전화에서 시험 문제를 미리 알고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메모를 확보한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메모 속에는 올해 1학기 중간고사 시험 문제에 실제로 출제됐던 키워드 등이 다수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쌍둥이 자매와 이들의 아버지인 전 교무부장 H(53)씨를 업무방해 혐의 피의자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지난 8월 31일 서울 강남 숙명여고 정문 앞에서 학부모들이 전 교무부장의 시험지 유출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태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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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H씨와 쌍둥이 자매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매는 지난 6일과 14일 두 차례 경찰에 소환됐지만 한 명이 건강 이상을 호소해 두 번 모두 조사를 다 받지 못하고 귀가했다. 경찰 관계자는 "건강 이상을 호소한 한 명이 의사 소견이 담긴 진단서를 제출해 조사가 원활히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전까지 시험 문제 유출 사건에서 학생들이 입건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통상적으로 유출한 교사와 학부모만이 기소돼 처벌을 받았고, 학생은 고교 내신 성적이 0점 처리됐다. 경찰이 이번 사건에서 쌍둥이 자매까지 입건한 것으로 볼 때 휴대전화에서 시험문제 유출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확보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한 사회적 충격이 큰 만큼, 혐의가 인정된다면 사법 처리와 별개로 H씨와 자매에게 가장 높은 수위의 징계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H씨의 징계는 징계 권한이 있는 사립학교법인의 결정에 따르게 된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8월 감사결과를 발표하면서 H씨에 대해 학교 측에 파면이나 해임, 정직에 해당하는 중징계를 요구했다. 정재완 숙명여고 교감은 "교육청 징계 요구에 따라 H씨의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고 했다.
쌍둥이 자매는 어떤 처분을 받을까. 초중등교육법에 따르면 학생 징계는 학교 내 봉사→사회봉사→특별교육이수 →정학→퇴학 순으로 수위가 올라간다. 이주희 서울시교육청 장학사는 "퇴학 등 학생 징계는 각 학교별 학칙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혐의가 입증된 학생이라도 교육청이 퇴학을 강제할 수 없다"며 "학교 선도위원회가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숙명여고에 따르면 학칙상 선도위원회는 징계 사안이 발생했을 때 열리게 된다. 정재완 숙명여고 교감은 "부정 행위 등에 대해서 혐의가 입증된다면 재학생의 퇴학 여부를 결정하는 선도위원회가 열릴 것"이라며 "언제 선도위원회를 열 지에 대해서는 아직 내부에서 논의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올해 발생한 5건의 학생 시험지 유출사건에서 퇴학 처분이 나온 것은 4건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출석정지(정학) 처분을 받았다. 지난 7월 서울의 한 자립형 사립고에서는 재학생 2명이 교사 연구실에 침입해 문학 시험지를 유출해 퇴학당했고, 같은 달 부산 특목고 학생 2명이 교사 연구실에서 시험지를 빼돌린 경우도 모두 퇴학이었다. 퇴학의 경우는 학생이 모두 직접 시험지를 빼돌린 경우였다. 교육계 관계자는 "쌍둥이 자매가 직접 문제를 빼돌린 것은 아니지만, 문제 유출을 사전에 인지한 것으로 확인된다면 최고 수준 징계인 퇴학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시험 성적도 0점 처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숙명여고 관계자는 "아직 수사 중인 사안이라서 혐의가 명확히 입증된 것이 아니어서 아직 구체적인 징계 수위에 대해 밝힐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1학년 때 전교 59등, 121등이던 쌍둥이 자매가 2학년 1학기 문·이과에서 전교 1등을 하며 불거졌다. 같은 학교 교무부장으로 있던 부친 H씨가 딸들에게 시험문제를 유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고,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8월 숙명여고에 대한 감사를 진행했다.
감사결과 쌍둥이 자매는 추후 정답이 정정(訂正)된 문제에 똑같은 오답을 적어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오답을 적어냈다’는 것은 시험 문제가 사전에 유출됐다는 의혹의 주요 근거다. 쌍둥이 자매의 대학수학능력 모의평가 성적은 ‘월등한 내신 성적’에 비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숙명여고 학부모들은 지난 8월부터 경찰에 진상 규명과 관련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숙명여고 학부모 모임은 이날 오후 8시에도 숙명여고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 계획이다.
[한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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