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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10리 이내서 모두 해결" 요즘 2030이 집순·집돌이가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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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진구 광장동에 10년째 거주 중인 직장인 김 모씨(29)는 퇴근 뒤 아파트 옆 문화센터에서 요가를 배운다. 금요일에는 강남이나 이태원을 가는 대신 최근 동네에 생긴 이색 주점에서 친구들과 한잔 기울인다. 주말에는 인근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뒤 산책 겸 한강을 따라 걷다 강변 테크노마트 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 봄에는 아차산길을 따라 벚꽃을 보고, 여름에는 집 앞 워커힐 호텔에서 호캉스를 즐긴다.

김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태원, 강남 같은 번화가에서 주로 놀았다"며 "그런데 밤에 택시도 잘 잡히지 않고 사람도 너무 많아서 최근 들어서는 동네에서 모든 걸 해결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시간과 돈을 써가며 동네를 벗어나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게 김씨의 설명.

2030 젊은 층을 중심으로 '원마일 이코노미(one-mile economy)'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소확행', '가심비'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은 여가를 즐기기 위해 더 이상 번화가를 찾지 않는다. 집에서 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집순이, 집돌이 등 '홈족(Home 族)'의 등장이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어냈다. 나의 공간인 '집'의 개념이 확장되면 '동네'가 된다. 이들은 집 밖보다는 안에서, 멀리 가기보다는 가까이에서 활동하길 원하며 '10리 경제'를 몸소 실천 중이다.

10리, 말 그대로 4km 반경 이내에서 트렌디한 디저트 카페, 이색 술집, 공방, 서점 등 여가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이런 트렌드를 반영하듯 부평의 평리단길, 대구 봉리단길, 경주의 황리단길 등 동네 상권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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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 '샤로수길' 곳곳에서 이국적인 인테리어로 꾸민 가게들을 만나볼 수 있다. [사진 = 김수연 인턴기자]


지금은 '핫플'로 유명해진 관악구 봉천동의 '샤로수길'도 초반에는 주택 단지뿐이었다. 이후 남부순환로가 개통되고 재개발 정책이 이어지며 서울대입구와 낙성대를 중심으로 상권이 일기 시작했다.

관악구에 거주 중인 대학생 송 모씨(25)는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집 근처에서만 활동한다. 송씨는 "3년여 전만 해도 슈퍼마켓이나 세탁소, 고깃집밖에 없는 주택가"였다며 "샤로수길이라는 말이 생기기 시작한 전후로 '힙'한 카페와 음식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동네에서만 활동하게 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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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입구역 인근에 위치한 독립서점 '살롱드북'. 커피, 맥주 등을 마시며 독서를 즐길 수 있다. [사진 = 김수연 인턴기자]


본래 주택가였던 곳이 신·구 감성이 조화를 이루며 샤로수길만의 독특한 감성을 지닌 상권으로 재탄생했다. 언뜻 보면 여타 다른 동네 골목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곳곳에 이색적인 간판을 내세운 다양한 가게를 마주할 수 있다. 한 곳에서 오래 자리를 지켜온 정육점과 외국 느낌이 물씬 풍기는 와인바의 조화는 샤로수길의 정제되지 않은 자유로움을 드러냈다.

골목 상권 부활로 임대료도 올랐다. 신촌·혜화 등 기존 임대료가 높았던 전통 상권이 정체되고 있는 것과는 상반된 모양새다.

봉천역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샤로수길 영향으로 서울대입구역 최근 2년 새 임대료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며 "임대 문의가 나오는 곳을 찾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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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리단길'에 위치한 공방 '제이리워크룸앤샵'. [사진 = 김수연 인턴기자]


송파구의 '송리단길' 역시 마찬가지다. 동네 주민들 위주로 소소하게 인기를 끌었던 카페들이 하나둘 입소문을 며 카페거리까지 생길 정도로 상권이 형성됐다. SNS를 통해 데이트 코스로 각광받으며 젊은 층들 사이에서 핫플로 떠올랐다. 카페를 중심으로 공방, 갤러리들도 새로 생겨나는 추세다.

패브릭·도자제품 공방 '제이리워크룸앤샵' 장애리 공동대표는 "송리단길이 유명해지면서 수요가 꾸준할 것으로 예상해 작년 7월 오픈하게 됐다"면서 "수강생 중에 소소하게 취미로 수업을 들으러 오시는 동네분들이 가장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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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 송리단길 유동인구가 늘어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사진 = 김수연 인턴기자]


이는 인근 석촌호수를 주심으로 롯데월드타워와 롯데월드몰이 들어서며 일어난 변화인 것으로 풀이된다. 송리단길에서 부동산을 운영 중인 한 관계자는 "석촌호수를 따라 롯데월드쪽인 서호까지 상권이 확장되는 추세"라면서 "상가의 매매가격이 주변 상업지역에 비해 낮은 3000만원 정도로 거래돼 입점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권리금과 임대료가 증가하면서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곳까지 상권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

송리단길에서 디저트 가게를 운영 중인 유준원씨는 "이곳 상권이 활성화되기 시작해 최근 9월 새롭게 오픈했다"며 "평일 저녁에 주변 동네 주민분들의 방문이 가장 많다"고 말했다.

유씨는 "석촌호수에서 운동을 하고 이쪽으로 넘어와 디저트를 사가시는 분들이 대다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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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나루역 인근에 위치한 퓨전주점 '도깨비'. 동네 주민들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 = 김수연 인턴기자]


동네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주민들 사이에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지역도 있다. 광장동에 거주 중인 직장인 김씨의 경우처럼 집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결과인 것으로 해석된다.

광장동 광나루역은 신흥 역세권으로 떠오르며 이색적인 점포가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최근 3년간 광나루역 상권 매출액은 33%가량 증가했다. 광나루역을 중심으로 아차산 생태공원, 그랜드 워커힐 호텔, 대학가 등이 몰려 있어 점차 활기를 띠는 모양새다. 지역 내 상권이 발전하면서 주민의 외부 유출이 적어지는 특성을 보였다.

광나루역 인근에 위치한 퓨전주점 '도깨비'를 운영하는 윤정아 대표는 "오픈한 지 약 3주가량이 지났는데 1주일 만에 500만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며 "동네 주민들의 수요가 상당하다"고 강조했다.

상권 발달로 유동 인구가 점차 증가할 것으로 예상, 유명 번화가보다는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이곳을 택했다는 게 윤 대표의 설명.

그는 "직접 그린 수채화 인테리어로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면서 "기본 메뉴는 전과 막걸리지만 밀푀유나베, 와인, 사케 등 다양한 메뉴를 통해 다양한 연령층을 아우를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십리경제 발달로 동네 상권이 부흥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전병헌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10리경제 트렌드에 따라 저평가된 지역 인근 상가 투자를 노려보는 것도 한 방법"이라면서도 "기존 상권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골목 상권의 대표주자였던 신사동 가로수길, 이태원 경리단길의 경우 급등하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 임차인들이 다른 곳으로 내몰렸다"면서 "워낙 임대료가 비싸 하락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이어 "동네 주민의 경우 임대료가 올라 득을 보는 경우도 있지만 주말마다 몰리는 인파로 불편을 겪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디지털뉴스국 김수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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