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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장에서는 낙찰봉 소리가 들리자마자 그림의 아랫부분이 세로로 가늘게 잘리기 시작했고, 액자 안에는 붉은 풍선이 담긴 윗부분만 남았다.
뱅크시의 인스타그램에는 경악을 금치 못하는 관중들의 사진과 함께 "진행 중, 진행 중, 파쇄 완료(Going, going, gone...)"라는 글이 올라왔다.
다음 날 논란이 커지자 뱅크시는 "몇 년 전에 그림이 경매에 나갈 것을 대비해 액자 안에 몰래 파쇄기를 설치했다"며 파쇄기 설치 과정과 파쇄 현장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그는 깜짝 퍼포먼스에 의미를 더하듯 "파괴하려는 충동은 곧 창조의 충동이다"라는 피카소의 구절을 인용했다.
앨릭스 브란크칙 소더비 현대예술 수석디렉터는 "우리가 뱅크시-당한 것 같다(It appears we just got Banksy-ed)"고 말했다.
경매에서 '풍선과 소녀'를 구매한 익명의 수집가는 11일 소더비를 통해 "그림이 조각났을 때는 충격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나만의 사건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예정대로 구매 절차를 밟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브란크칙 수석디렉터는 작가 본인이 직접 사건을 계획한 것이 입증된 만큼 "뱅크시는 작품을 파괴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작품을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에 뱅크시는 파쇄된 그림에 새로운 제목을 붙였다.
새로운 제목은 '사랑은 쓰레기통 안에 있다(Love is in the Bin)'다.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거리의 화가 뱅크시는 기발한 유머 감각과 신랄한 현실 비판이 담긴 그래피티로 이름을 알렸다. '풍선과 소녀'는 지난해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예술 작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yjchoi75300@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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